한국인의 성공 DNA_한국인의 기질은 “정체성과 유연성"

한국인의 성공 DNA

 

1. 한국이란 어떤 나라인가

한국은 5천 년 역사 동안 주변 이민족의 크고 작은 침략을 1천여 회에 걸쳐 당했다. 긴 세월 동안 무수히 당한 치욕과 탄압, 수탈은 한국 민족의 기질형성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우리는 걸핏하면 단일민족을 내세우지만 많은 전란을 겪으며 인종적으로는 북방의 다양한 인종과 많은 혼혈이 일어난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최근 들어서는 한국 민족의 뿌리가 훈족과 같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과거 서유럽에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촉발시키고 로마 제국을 위기로 몰아넣은 훈족이 한국 민족의 일파라는 것이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한국인은 다민족의 혈통을 이어받으면서 다양한 국제문화를 수용, 융합해 오면서 독자적인 문화를 다져온 역동적인 민족이라는 사실을 유출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을 이스라엘과 비교하는 일이 많다. 이스라엘은 678만 명의 인구에 국토 크기는 한반도의 1/10에 불과하지만, 주위 아랍 국가들의 인구는 약 15천만 명에 달한다. 20배가 넘는 잠재적군과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높은 교육수준에 최신 과학기술 인프라를 갖추고 첨단 병기로 무장하여 주변 아랍세계를 압도하고 있다. 또한 해외 유태인 네트워크는 세계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떠한가. 일본, 중국, 러시아가 한반도의 100배가 넘는 광활한 영토로 에워싸고 있다. 인구만도 한국의 30배가 넘는다. 게다가 이들 3국은 초강대국의 반열에 올라 있는 나라들이다. 이 속에서 우리는 5천 년 동안 끈질기게 제자리를 지켜왔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시련을 겪으면서도 민족의 생존과 문화전통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 이스라엘도 민족해체로 1,800년을 유랑하며 생존근거를 잃었지만 민족문화만은 잃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내성이 강한 질긴 생명력의 문화를 가졌기 때문이다. 평범하고 밋밋한 역사와 문화라면 쉽사리 잊혀지거나 다른 문화에 동화되어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수천 년 역사를 통해 줄기찬 침략과 저항 속에서 축적되고 단련된 독자적 문화는 뿌리가 너무 깊어 쉽게 마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과 이스라엘의 차이는 무엇인가. 문화의 질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일신에 대한 관념이 강해서 지배자인 로마의 다원종교를 용납하지 않았다. 때문에 로마는 이스라엘의 문화적 우월의식이나 극단적 저항문화에 대해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보았다. 반면 한국은 방법론에서 모든 종교와 권위를 수용하는 유연성으로 공존의 길을 열어놓았다. 그래서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은 위기상황이 와도 양보와 타협, 융합과 조화를 추구하면서 강대국의 정복욕을 자극하지 않았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결전에 임해서는 민족생존과 주체성에 대한 강렬한 집착을 보여왔다. 이처럼 얼룩진 역사 속에서 터득한 생존의 지혜가 계승되어 온 결과 우리는 5천 년을 버틸 수가 있었다.

 

2. 한국, 어디쯤 왔나

2005120일 미국 부시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 초청된 미국과 세계 각국의 유명 인사들은 식장 요소요소에 설치된 TV를 통해 취임식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 자리에 설치된 TV는 모두 한국제품이었다. 이날 엘지전자의 PDP TV는 대통령 취임식의 공식 중계 TV로 선정되어, 식장은 물론 이어 열린 리셉션과 축하 연회장에서도 선명한 화질을 자랑했다. 세계 최강의 기술선진국이자 강대국 서열 1위인 미국의 안방에서 한국산 IT 제품이 주목받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경제상황은 수치상으로는 순항의 돛을 올린 것으로 보인다. 총 교역량이 5천억 달러를 넘고 있으며 국내총생산 규모는 세계 12(2005년 기준)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29, 외환보유액은 4, 자동차 생산량은 5, 인터넷 이용자 수는 3위이다. 여기에 골드만삭스는 한국이 20501인당 국민소득이 81,462달러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제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부국이 되었다. 그러나 급히 이룬 성공의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이 발표한 2006년 세계경쟁력 조사에서 한국은 전 세계에서 38위를 차지했다. 정부 및 행정효율성, 기업경영 효율성이 낮은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한국 경제가 역동적인 데에 비해 경쟁력이 따르지 못하는 이유는 정치, 행정, 기업 경영의 효율성이 크게 낙후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부패감시 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는 한국을 심각한 부패국가로 지목하고 있다. 국가청렴도 순위도 매년 세계 40위권을 맴돌고 있다. 한국인이 자체 평가하는 부패지수 순위는 의회, 정당, 경찰, 세관, 법조계, 매체, 교육 시스템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치계와 정부기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보여준다. 미국 미시간대학이 세계 82개국을 대상으로 한 국민의 행복과 삶의 만족도 조사에서 한국은 49위로 나타났다. 경제적 풍요와 국민의 행복이 불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세계 11위의 교역규모를 자랑하는 무역에서도 우려할 만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 제품 중 세계 1위를 차지하는 제품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중국 등 후발경쟁국의 맹추격과 위기의식을 느낀 선진국의 분발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이 보이는 곳은 인적 잠재력이다. OECD에 따르면 한국 학생의 학업성취도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해외 유학생의 급증으로 국제수준의 경쟁력 있는 인재양성이 급증하고 있다. 유학생의 증가는 한국의 국제화와 기술개발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1세기의 중심산업으로 떠오르는 문화산업에서도 한국의 잠재력이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정보통신 인프라를 바탕으로 문화콘텐츠 산업(영상, 게임, 음반, 만화)에서 놀라운 성과가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아시아권에 몰아치는 한류열풍은 한국의 문화산업 활성화에 불을 지피고 있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우호적 이미지 제고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늦은 산업화를 교훈 삼아 정보사회에서는 선진국이 되려는 의욕으로 불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한국 민족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고 여기에 국력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지혜로운 국가전략은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라 할 수 있다.

 

3. 새로운 세계 질서와 한국의 기회

21세기 사회체제는 기존 산업사회와는 성격이 완연히 다른 사회이다. 지금까지는 부와 권력의 크기가 유형적, 양적으로 나타났다. 국가는 얼마나 넓은 땅에 많은 국민과 군사력, 풍부한 천연자원을 가졌는가에서 그 강약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대부분의 부가 지식에서 나오게 되어 있다. 미국 MS사의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세계 최고의 부호가 된 것도 유형의 제조업이 아닌 무형의 기술에 사운을 걸어 지식경쟁에서 선두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식사회가 본격화되면 사회 모든 분야의 발전 정도는 그 분야의 지식수준으로 결판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자질도 고도지식사회에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느냐에 따라 우열이 갈라진다. 이에 대한 대응책은 국제 분업 추세에 따라 선택과 집중정책으로 선명한 목표를 선정, 일관성 있는 경쟁력을 기르는 한편, 관련 지식의 전문주체인 전문 인력양성에 온 힘을 쏟는 수밖에 없다.

 

100년을 주기로 국운이 바뀐다는 모델스키의 주기설을 따르면 한국은 21세기 초반 번영의 세기를 맞도록 되어 있다. 역사상 최초로 근대화의 몸부림을 시도했던 갑신정변(1884) 이후 한국은 지지부진한 산업화로 혼돈의 100년 세월을 허비했지만, 정보화 사회에서는 발 빠른 정책을 앞세워 잃어버린 세월을 만회하고 있다. 어떤 학자는 한국의 미래에 대해 라는 동양적 이론을 과학적 시각으로 조명한다. 일반적으로 전기 스파크는 뾰족한 데서만 일어난다. 한반도는 남쪽으로 갈수록 지형이 뾰족해서 강한 기가 모여 있다. 따라서 한국인은 평소부터 기가 넘쳐서 행동이 폭발적이고 역동적이다. 데모를 해도 화염병이나 돌을 닥치는 대로 던져야 직성이 풀린다. 공부에도 한번 맛을 들이면 너무 도전적으로 빠져들어 정부가 나서서 처벌할 정도가 되어야 제동이 걸린다. 이런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는 그의 결론은 고무적이다. 한반도로 밀려드는 를 전기 현상론적 아날로지 관점에서 분석하면 21세기야말로 한국 민족의 시대가 되리라는 신념을 얻었다.

 

한국은 지금 좋은 기회를 만난 것이 확실해 보인다. 과거 한국의 역사는 언제나 세계사의 뒷줄에서 허덕이면서 쫓아온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모처럼 맞이한 유리한 국제조류를 능동적으로 수용할 수만 있다면 기회를 잡는 것이 가능하다. 세계최고 수준의 정보망이 구축되어 있고, 정보화 열풍은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로 전 산업에 불어대고 있다. 정보화 추진과정에서 축적한 자신감과 발전리듬으로 내부 잠재력을 끌어올린다면 우리는 일찍이 만난 적이 없는 21세기 중심국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4. 한국인의 기질

인간의 기질은 유전자보다 문화적 요인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민족의 기질도 오랜 세월 형성되어온 집단성격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인의 기질과 민족성도 한반도에 갇혀 살면서 생성된 고유의 특성이다. 한국인의 기질에 대한 평판은 학자마다, 보는 관점에 따라 각양각색이지만 두 개의 큰 축 즉 정체성과 유연성으로 압축해 볼 수 있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국가와 민족의 생존과 계속성을 유지시켜 주는 버팀목이다. 정체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안에는 오랜 전통 속에 녹아 있는 거대하고 미묘한 질서의식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두부 모 자르듯 정형화되어 있지 않지만 뿌리는 의외로 강하고 질기다. 그래서 정체성에 의심이 가면 아무리 강한 힘 앞에서도 마음으로 승복하지 않는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경직된 노사대결국가로 정평이 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외형적인 근로조건보다는 유산자에 대한 노동자의 정체성 갈등이 잠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국사회에 뿌리 깊은 반 기업정서나 노동단체들의 짙은 정치성향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이 이 땅에 경제기적을 쌓은 확실한 치적이 있는데도 반세기가 넘도록 정통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을 보면 한국인이 얼마나 이념에 대한 집착이 큰지 알 수 있다. 한국인의 기질 속에 있는 국민 정체성을 상징하는 특성으로는 전통문화와 유교적 가치관, 천명사상, 평화정신, 대의명분, 도덕법규, 민주적 기본질서 등이 있다.

 

어느 고승이 제자에게 이빨 빠진 입을 크게 벌리고 물었다. 내 입 안에 무엇이 보이느냐? 혀가 보입니다. 그러자 고승이 엄숙히 말했다. 그렇다. 딱딱한 이빨은 오래 가지 못한다. 그러나 유연한 혀는 이 나이가 되도록 남아 있지 않느냐. 세상사 유연함이 경직된 태도보다 생명이 길다는 진리를 보여주는 일화이다. 국가나 민족의 생명도 이와 동일하다. 한국인의 유연성은 역사적으로 익혀온 생존수단이다. 한국인은 무수한 외세침략에 대해서도 이 유연성으로 저항과 협력을 반복하면서 둥지를 지켜왔다. 국가적 시련의 농도에 따라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면서 역경을 헤쳐온 것이다. 한국인의 유연성을 대표하는 특성은 많다. 뛰어난 적응력, 감성과 인정주의, 풍류정신, 즉흥성과 속도감,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창의 정신, 조화와 융합 정신, 강력한 경쟁과 모험정신에다 광대한 포용력까지 낳게 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남북한이 타협하기 어려운 정체성 대립 속에서도 한국인의 혈연과 인정적 동질성이 현실적 접근을 가능케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유연성이 지나치면 정체성까지 뒤흔드는 역기능이 있다. 감상적 민족주의, 친소에 의한 파벌의식, 계급대립과 불신풍조, 지속성과 일관성 부족, 부화뇌동과 향락문화, 감성적 포퓰리즘 등은 민족적 기질의 뿌리가 되는 정체성을 흔들어 놓을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한국인의 기질 깊은 곳에는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특별한 융합력이 있다. 용서와 화해라는 민족을 하나로 묶는 질긴 운명의 끈이 기질 저변에 면면히 이어오지 못했다면 우리는 세계역사에서 사라진 민족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5. 동조산업 - 따라 하고 참견하는 기질로 남들보다 반 발자국 앞선다

한국 관광객 20명이 방콕 어느 관광지의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종업원이 다양한 먹거리를 소개하자 관광객 중 지위가 높아 보이는 사람이 메뉴 중에 희귀한 음식을 청했다. 그러자 일행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은 음식을 청했다. 더 난처한 것은 주문한 지 겨우 몇 분 만에 음식이 빨리 안 나온다고 난리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날 그 식당은 비상이 걸렸다. 재료가 모자라 근처 음식점을 돌면서 수집을 하느라 부산까지 떨어야 했다. 그 날 이후 근처 식당들은 한국 관광객의 따라 하기에 맞추기 위해 재료의 공유체제를 구축했다고 한다.

 

한국인의 성향은 유별나다. 남이 자동차, , 가전제품을 새로 사면 나도 사야 하고, 남이 명품을 들고 다니면 짝퉁이라도 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남의 자식이 학원 다니고 외국연수 나가면 내 자식도 같은 코스를 밟아야 마음이 놓인다. 기업 활동에서는 남이 발굴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좀 된다 싶으면 순식간에 모방홍수를 부추겨 난장판을 만들어 버리는 예가 허다하다. 이 모두가 남의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고 싶어 하는 관여의식과 이를 집단적으로 따라 하는 동조현상에서 나온 역기능 사례이다.

 

한국에는 5대 수출상품이 있다. 반도체, 전자제품, 자동차, 철강, 조선, 석유화학이 그것이다. 이는 일본의 5대 수출상품과 같다. 이처럼 한국의 산업화는 일본의 기본모델을 따라 한 것이 대부분이다. 비슷한 문화를 가진 일본이 하니까 우리가 해도 승산이 있다고 낙관했기 때문이다. 따라 하기 풍조는 국내기업끼리도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더 극성스럽다. 잘못했다가는 투자 중복에 출혈경쟁으로 함께 망할 텐데도 막무가내다. 물론 이런 풍조가 국내기업에 내성을 길러주어 강인한 대외경쟁력을 갖게 한 원동력이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근래 들어 이런 따라 하기가 점점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세계시장이 양의 시대에서 품질과 브랜드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과거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따라 하는 데 그치지 말고 한국인의 기질에서 우러나온 순발력을 최대한 동원, 특유의 역동성과 속도문화로 승부를 거는 새로운 모델개발에 나서야 한다.

 

한국인의 관여정신 끝자락 부분에는 만사를 선과 악으로 단정 짓는 이분법적 사고가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한번 휩싸이면 구체적 법적 효력도 맥을 추지 못하게 된다. 지난 2005년 국적법 개정과 관련해 합법적으로 한국 국적을 포기한 자에 대한 세상의 시선이 대표적이다. 언론이 한번 문제를 제기하자 국회, 사회단체, 인터넷 여론의 질타가 봇물처럼 터져 나와 당사자들은 얼이 빠져 버렸다. 국적 포기자가 범죄자가 아닌데도 개개인의 사정을 무시하고 부도덕한 변절자로 몰매를 가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이기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6.25 때 지역주민들에 의해 감정적 인민재판이 성행한 이유도 아마 이와 같을 것이다.

 

남을 용납하는 데는 인색하면서 자기만은 당연히 참견하고 단죄할 수 있다는 관여주의와 감성주의 논리는 오랫동안 억눌림을 통해 쌓여온 사회, 집단, 개인적 울분과 실체회복을 위한 몸부림의 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자유와 기회의 확대, 왕성한 사회참여의 장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또 사회통합과 건강한 사회구축을 위해서라도 자율과 자제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던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영국 유학생활을 통해 자신의 이념적 집착을 바꾸게 된 동기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당시 국제사회에서는 박 대통령의 경제발전 모델이 화제였다. 중국 유학생들조차 자신들의 발전모델이라고 했다. 여기서 세상을 넓게 보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반성할 것은 반성하되 긍지를 갖고 내세울 유산은 긍정적으로 평가해 미래의 에너지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껏 국력의 걸림돌로 인식되어 온 사회여론의 감정적 쏠림현상이나 자유분방한 관여정신도 생각의 방향을 조금만 틀어주면 순기능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이 앞으로 사회부패 구조 청산, 지역 갈등 극복,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나가는 자정작용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남이 부러워하는 새로운 기질의 국민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6. 감성산업 - 풍부한 상상력과 역동적 기질이 새로운 가치를 낳는다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예민한 감성기질을 가지고 있다. 풍류적 기질이 남달라 놀고먹기를 좋아하는가 하면 의리와 이념 등 인정주의나 정체성 시비에도 쉽게 빠져든다. 이런 특성이 동조성을 띨 때 파급효과는 폭발적이다. 이 감성기질에도 이중성이 있다. 하나는 이념에 대한 집념처럼 뿌리 깊은 편파성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완고함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유행과 엔터테인먼트 같은 분야에서 변덕스런 기질을 보여주고 있다.

 

기분에 살고 기분에 죽는다는 한국인의 감성적 기질을 함축한 말이다. 한국인의 감성적 특질은 엔터테인먼트, 관광, 향락 등 놀이문화 산업에서 특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한국은 과거 수십 년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느라고 감성산업에 눈을 돌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들어서야 문화욕구가 분출하고 여기에 맞추어 다채로운 개성이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나서는 정신적 질풍노도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한국의 감성산업이 주목 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요새는 제품별 기술격차가 줄어들면서 승부는 외형(디자인)에서 결판이 난다. 어느 것이 감성적 호소력이 강한가로 승부가 나는 것이다. 휴대전화만 해도 6개월 주기로 모델이 바뀐다. 고객의 기호가 시시때때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의 변화는 한국인의 감성적이고 변화를 즐기는 기질과 딱 맞아떨어진다. 가전, 핸드폰 등 IT 제품을 비롯하여 자동차, 의류 등 많은 분야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한국인의 감성기질이 때를 만난 듯 분출되고 있다.

 

한국인의 기질에 대해 공과 사의 구분이 애매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인의 감성적이며 집단 이기성이 강한 기질 때문이다. 대다수의 국가는 법과 제도에 의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조직문화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조직문화는 다르다. 리더의 철학과 의지에 따라 법과 제도는 언제나 바꿀 수 있는 수단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흑묘백묘론에 대해서는 줏대 없는 논리라고 나무라면서 때로는 꿩 잡는 게 매라는 논리를 펴는 곳이 한국이다. 그래서 법과 제도는 사람에 따라 자주 바뀐다. 법과 제도라는 틀 속에 갇혀 살기보다 조직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꿈틀대는 유기체로 활동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 변덕스런 감성적 힘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을 수 있을까?

 

특별한 묘방은 없다. 타고난 기질을 법이나 제도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꿈을 심어주고 신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지도자의 리더십이 효율적이다. 감성기질은 정밀성이 떨어지고 성급하며 일관성이 부족한 것이 흠이지만 전체를 한눈에 조망하는 균형의식과 힘찬 추진력을 끌어내는 장점이 있다. 21세기가 지식사회로 접어들고 인간 감성이 경쟁력 향상에 깊이 개입되면서 각국은 감성산업 개발에 정성을 쏟고 있다. 이로 보아 한국인의 타고난 감성기질은 리더만 잘 만난다면 기업경영에서도 뛰어난 힘을 발휘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국가나 기업을 막론하고 조직의 장래성이나 견고성 이상으로 최고경영자의 역량이 중시되고 있다. 감성문화가 힘을 얻는 조직 특성상 시스템적 경영보다 개인적 리더십이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성향은 조직이 복잡하고 거대해지게 되거나, 문화가 다른 세계시장을 공략해야 하는 경우에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

첫째, 희망이 보이는 밝은 비전을 통해 구성원 모두에게 감성적 동참의식을 자극하고,

둘째, 전문화된 시스템 조직을 적극 수용하고,

셋째, 윤리경영으로 도덕성을 높이고, 마지막으로 밝은 공존 문화를 체질화해야 한다.

 

7. 접목산업 - 비빔밥 문화, 즉 융합과 조화는 네트워크 사회의 필수 아이콘이다.

한국 존슨 사장 폴 리차드슨은 비빔밥이 세계적인 음식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든다.

우선 싱싱한 야채를 풍성하게 먹을 수 있다.

둘째, 고추장의 양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셋째 매운 것을 못 먹는 외국인에게도 부담이 없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직접 비빌 수 있다는 점이 음식을 만드는 재미를 선사한다. 비빔밥은 한국의 전통음식이다. 그러나 이 비빔밥이야말로 주변 국가에서 밀려 온 외래문화를 전통문화 속에 조화롭게 융합함으로써 한국 특유의 문화를 창조해내는 용해력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인은 체질적으로 접목과 융합에 익숙한 민족이다. 한국인의 생활 속에는 알게 모르게 동서양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접목되어 있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예술부문에서는 국악관현악단이 서양식 지휘문화와 합주방식을 정착시켰고, 김덕수 사물놀이에 재즈를 접목시킨 특이한 공연이 인기를 끌고 있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접목도 왕성하게 대중을 자극하고 있다. 이것은 서양에서 실험 중인 크로스오버 음악을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뿌리 내린 사례이다.

 

접목문화는 음식문화에도 일어난다. 소위 퓨전음식이라는 국적 불명의 메뉴들이 식당가를 채워가고 있다. 전통 한식메뉴 속에 서양음식이 끼어드는가 하면 김치 피자 같은 동서양 혼합식이 수출되기도 한다. 중국음식에도 기존의 자장면과 짬뽕을 혼합한 짬짜면 같은 복합제품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대형 백화점이나 쇼핑센터, 재래시장, 대형 놀이공원도 본래의 목적 외에 예술과 놀이문화와의 접목이 한창이다. 방대한 상품 매장 사이사이에 놀이 공간, 먹거리 공간이 끼어 있는 것이다. 한국의 섞어 문화 전통은 역사 이래 멎은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한국인은 외래문화를 전통문화에 접목하면서 한국적인 독창문화로 거듭나곤 했다. 이러한 융합기질은 언젠가 한국사회의 어두운 과제가 되고 있는 계층 간, 지역 간, 장르 간, 이념 간 경계까지도 해체시켜 줄 것이다.

 

기업이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기술개발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기업 혼자의 힘으로는 힘들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장의 최전선에서 경쟁의 벽을 헤쳐 나갈 것인가? 한국인의 기질로 보아 기존 기술을 순발력 있게 접목시킨 새 제품을 만드는 것이 더 이상적이다. 기존 제품에 다른 기능을 접목 다기능화시키는 것이다. 접목산업이 활성화되면 주력상품이라는 것도 제자리걸음을 벗어나 변신을 거듭하면서 변화를 불러오게 된다.

 

세계는 지금 기업과 기업, 상품과 상품, 상품과 서비스의 접목시대라 할 만큼 활발한 융합바람이 맹렬하게 불고 있다. 디지털과 네트워크 기술이 열리고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 이루어지면서 그 틈새로 상상할 수 없는 새 기술, 새 제품, 새 시장이 들어서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눈부신 접목이 일어나는 분야가 IT 분야이다. 카메라, 휴대전화, MP3 등이 복합기능으로 합쳐지는 디지털 컨버전스 제품은 한국산이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또한 한국기업은 상품에 문화를 접목하기도 한다. 제품을 수출하는데 그치지 않고 현지의 관습과 문화에 맞는 가공과정을 거쳐 내놓는 것이다.

 

엘지전자는 중동사람들이 기호식품인 대추야자를 숙성해 먹는 점을 감안, 대추야자를 영하 25도로 급냉각시켜 대추야자 맛을 6개월간 유지하게 하는 대추야자 냉장고로 대박을 터뜨렸다. 또 휴대전화에 메카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 장치를 넣은 메카 폰으로 시장을 압도해 버렸다. 이슬람권의 종교적 열망을 활용하여 문화와 상품을 접목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 비빔밥 문화의 저력은 지금 산업현장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워가고 있다. 국내외 환경에의 적응력과 자신감이 높아지면 잠재된 접목기질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8. 속도산업 - 디지털 시대의 빨리빨리는 흠이 아닌 경쟁력이다

과거에는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었지만 미래에는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삼켜버리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초고속 정보통신망이 세계 각지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어느 기업도 속도시대에 걸맞은 빠른 판단, 빠른 행동, 빠른 변신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다. 미국 델컴퓨터는 속도 경영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동사는 고객의 주문을 받은 후 3~4일 만에 맞춤 컴퓨터를 공급하는 생산혁명을 이룩했다. 고객의 주문 후에야 생산에 들어가므로 재고도 없고 유통비도 절감할 수 있어 좋은 품질의 PC를 값싸게 공급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소비자를 만족시키고 있다. 주문, 생산, 판매를 거의 동시에 실시하는 속도경영은 제3의 생산혁명으로 불리고 있을 정도이다.

 

인터넷사이트를 뒤지면 빨리빨리(PPA LLI PPA LLI)라는 국제어를 찾아볼 수 있다. 영국 옥스포드 사전에 등재된 지 오래 전 일이다. 한국인의 급한 성질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이다. 한국인에게 위장병이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빠른 식습관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한국인의 성급한 기질은 고대사회 때부터 잠재되어 있었다. 특수한 입지조건과 순탄치 않은 역사를 통해서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다. 한국인의 동조의식과 민감한 감성 기질 등은 모두 주변 환경의 변화를 주시, 민첩하게 대응해 오면서 익혀진 특성들이다. 재빠른 상황파악과 빠른 결단, 순발력 있는 대응 태세는 수천 년 전부터 한국인의 생존전략으로 체질화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인의 속도감이 집단적 힘으로 드러난 것은 국가주도의 경제개발정책이 계기가 되었다. 도로, 주택, 교량 등 건설 산업을 필두로 조선, 철강, 화학, 비료 등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 산업에 뒤늦게 뛰어들었는데, 여기서 적자를 극복하는 길은 남이 꺼리는 험한 작업환경이나 목표의 조기달성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선진국과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속도감이 전 산업에서 퍼져 나가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엔진이 된 것이다. 예를 들어 국내 PC 제품의 주기는 1996년에는 1년에 한 번 일어났다. 신제품 개발에 3개월, 생산기간 3개월, 판매기간 6개월이 걸렸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에는 1, 1, 3으로 1년에 2.5사이클로 바뀌어져 버렸다. PC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동차, 휴대전화, TV 등 가전제품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생산, 유통, 인사, 재무, 마케팅 등 일련의 기업 활동에서 시스템적 조직운영과 네트워크 기능을 극대화하여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속도경영이다. 속도경영이란 결국 시간의 이익을 얼마나 늘려갈 수 있느냐가 성패의 관건이 된다. 시간산업의 성공조건에는 작업환경의 우열도 중요하지만 생산인력의 열정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이러한 점에서 시간산업은 한국인의 기질에 너무 잘 맞는다. 한번 흥이 나면 집단적 집중력이 상상을 뛰어넘고 또한 신바람 기질이 가속도를 내게 해주기 때문이다. IT 산업을 위시하여 조선, 건설, 자동차, 철강 분야에서 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시간단축의 이익실현에서 다른 나라를 앞서기 때문이다.

 

앙골라에서 한국은 기적을 만드는 나라로 알려졌다. 한국의 남광토건이 2년 이상 걸리는 국제 컨벤션 센터를 단 8개월 만에 준공해버린 것이다. 당시 앙골라 국영석유회사 소낭골은 아프리카 석유장관회의를 이 컨벤션 센터에서 치르게 되어 몹시 다급한 상황이었다. 10개월 안에 연 면적 4,700평 센터 건물과 귀빈숙소 20채를 완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외국의 건설업체들은 모두 수주를 포기했다. 그때 소낭골의 이집트인 자문역이 한국을 추천했다. 중동에서 한국 건설사들이 일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한국의 남광토건은 모험을 감행했고, 결국 8개월 만에 훌륭하게 해냈다. 여기서 얻은 신용이 힘이 되어 남광토건은 지금 앙골라에서 그 몇 배의 건설수주를 획득하는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9. 풍류산업 - 놀기 좋아하는 한국인만의 신바람 기질로 새 문화를 창조한다

한국인의 풍류기질은 타고났다고 한다. 여기에는 정해진 규격과 틀이 따로 없다. 한국인의 전통 노래는 여간해서 채보가 어렵다. 일부러 이를 기호화했다 해도 개성적인 가락 안에는 무수한 유파와 특성이 갈라지고 있어 표준화가 잘 안 된다. 춤에서도 한국에는 블루스, 탱고, 왈츠 같은 정형화된 춤이 없다. 흥이 나면 격식에 구애받지 않은 자연발생적 창작 춤이 펼쳐진다. 그러면서도 여럿이 어울린 춤판은 묘한 조화를 이루어 낸다. 규격 속에 가두어 통일시키기보다는 각자 따로 놀 수 있도록 개방해 놓되 전체와는 균형이 맞추어진 형국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의 풍류정신에는 집단적 동질성과 개성적 기질 간의 조화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한국인의 음악적 재능은 특히 대중음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클래식, 판소리, 뽕짝, , 힙합, 댄스음악이 한 마당에서 무리 없이 공존하고 있다. 형식이나 곡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신명이다. 신명이 나면 고조된 감성적 동질감 속에 모든 것이 녹아 버린다. 자신을 잊고 끓어오르는 열기 속에서 엄청난 폭발력이 생긴다. 이때에는 금기도 갈등도 원칙도 맥없이 허물어져 하나로 통합된다. 그래서 한국인에게는 기쁨과 슬픔, 고통, 분노마저도 풍류적 신명으로 흡수, 공유하는 특별한 풍류문화가 뿌리를 내려왔다.

 

거대한 문화시장의 영향력이 지구촌 곳곳으로 번지면서 소프트 파워는 이제 국력을 재는 새로운 잣대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소프트 파워의 경쟁력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남다른 한국인의 기질을 들고 있다.

 

첫째, 한국인은 유난스레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어렸을 때부터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자라났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스토리에 맛깔스런 말솜씨의 얘기꾼이 인기를 끌어왔다. 이러한 재능이나 풍속이 바탕이 되어 한국영화는 같은 소재라도 영상 속에 버무려내는 영상서사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 히트 영화 , 주온의 리메이크를 주도한 프로듀서 로이 리는 한국인의 스토리 전개능력을 큰 강점으로 꼽고 있다. 내러티브와 스토리텔링이 워낙 좋기 때문에 할리우드만큼 돈이 있다면 한국은 할리우드보다 영화를 더 잘 만들 것이라고 극찬했다.

 

둘째, 한국인은 아무리 좋은 작품도 비판적 시선으로 참견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드라마 작가가 힘들다. 제작과 방영을 병행하고 매회 인터넷으로 시청률 조사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청자 여론에 따라 줄거리를 엮어가면서 흥미와 시청률을 높이곤 한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고 비극을 해피엔딩으로 반전시킬 수도 있다. 한국 관객의 변덕은 누구도 못 말린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고도의 순발력, 적응력, 생명력을 두루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국내에서 인정받고 세계시장에 나가면 마치 달고 있는 모래주머니를 떼고 달리는 기분입니다. 국내 시장의 시련을 딛고 해외진출에 성공한 한 업체 임원의 말이다 방송뿐 아니라 모든 산업 분야에서 말 많고 탈 많은 국내 소비자의 높은 안목으로 검증받아야 어디에 내놓아도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 한국인의 감성, 접목, 성급한 속도 문화에서 적응력이 높아진 점이다. 한국의 문화산업은 선진국과 비교가 안 된다. 문화상품의 제작 환경, 공급 능력, 마케팅 능력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시장 자체도 협소하여 뿌리를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발전된 IT환경이 그러한 난점에 숨통을 터주고 있다. 인터넷, 휴대전화, 위성방송, 매체 홍수 시대로 접어들면서 문화시장이 소수의 공급자 중심에서 다수의 정보소비자 중심으로 바뀌는 테크노컬처라는 징후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테크노컬처는 대기업의 손에 있던 문화 권력을 창의적인 중소기업과 대중소비자에게 옮겨주는데, 이는 한국인의 모험적 벤처기질과 속도문화, 다양한 접목문화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10.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발판 삼아 국가 발전에 불을 지핀다

지금 지구촌은 단일 문화, 단일 시장권으로 통합화 과정을 밟고 있으며 지식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지식과 문화서비스 시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저작권 및 특허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세계지식 시장은 문화, 기술, 교육의 공유로 인한 각종 콘텐츠와 기술사용료 등 무형거래가 주종을 이루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한국의 지적 무역은 아직 초보단계이다. 기업들이 독창적 기술개발보다 타국의 기술을 빌려 쓰거나 모방하는 동조성향이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통계에 의하면 기술무역에서 수입은 97%인 데에 비해 수출은 3%에 불과하다. 세계 11대 무역대국인 한국의 속사정이 밝지만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잠재력은 산업화를 따라잡을 때보다 지식사회로의 여건이 더 유리한 편이다. 특히 한국인의 지적 호기심이나 수용능력은 세계적이다. 이는 한국인의 유난스런 교육열에서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1%로 선진국보다 높다. 공교육은 OECD 평균보다 못하지만 사교육비 지출이 전 세계 1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국가재정의 부족한 부분을 우리나라 부모들의 특별한 교육열이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사교육 열풍은 상상을 초월한다. 전국에 6만 개의 사설학원이 있으며 수강생 규모만도 수백만 명이 넘는다. 유아교육, 성인들의 직업전환 교육, 기술교육, 자격시험 교육, 재교육 기관까지 빠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인터넷을 비롯한 온라인 사이버 교육 시장의 성장세도 무섭다.

 

오늘날 모든 산업은 기술과 무관한 것이 거의 없다. 끊임없이 새 기술, 새 기법, 새 규정이 만들어지고 수정되고 있다. 그것도 혁신주기가 하도 빨라 1년만 멈춰 있으면 따라갈 수가 없는 지경에 빠진다. 이러한 빠른 변화를 따라가는 교육을 정규 공적교육 기관이 감당할 수 없다. 대부분이 새 기술을 만든 당사자나 순발력 있는 전문 재교육 기관이 담당할 수밖에 없다. 특히 기업들의 경우에는 전 직원이 새 환경, 새 기술, 새 기법을 배워야만 경쟁력이 올라간다. 그래서 세계적인 기업들은 자체인력의 재교육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런 변화는 한국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인은 예전부터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기질적으로 몸에 밴 민족이다. 한국에서 불고 있는 교육열풍은 수백 년, 수천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누구도 못 말릴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새롭고 신기한 것에 관심이 많고 남 따라 하기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동조성과 빨리빨리 문화만으로도 한국 교육시장의 성장가능성을 점칠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영향이 교육 분야에도 빠르게 파급되고 있다. 세계시장이 개방되면서 기술의 표준화가 네트워크 기술체제의 관건이 되듯이 법률, 회계, 특허, 전자상거래, 교역방식 등도 국제적 표준화로 달려가고 있다. 창조산업의 원천이 되는 문화도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나라의 문화가 세계 표준문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때 선진국을 무조건 추종하는 후발국들의 종착점은 문화종속일 수밖에 없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교육 선진국을 모델로 베껴 쓰다 보면 전통문화는 사라져버리고 국가 정체성까지 해체될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도 고향과 같은 한국문화를 저버려서는 문화국적을 잃은 국제미아가 되거나 서구 문화의 변종으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과제는 바로 서구 문화의 대세 속에서 한국 문화의 독창성을 어떻게 자랑스럽게 살려 내느냐 하는 것이다. 그 해답 역시 교육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어려서부터 교육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알맞은 체질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민족정체성과 민족적 자존심을 투쟁과 대결의 수단이 아닌, 독창적인 한국 문화, 한국적 경영문화로 국제적인 호응을 이끌어 내는 수단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발상의 전환이 교육계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때 비로소 우리 교육은 세계의 부러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11. 경영문화에 나타난 한국인의 기질적 특성

한국만큼 리더의 영향력이 강한 나라도 없다. 그동안 겪어온 수많은 국난 극복의 역사가 이를 말해준다. 한국인의 기질 속에는 자신 위에 군림하는 위압적인 사람을 무시하고 증오하는 자유정신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다른 편에서는 강력한 지도자 아래에서 안정된 규제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유연한 협력정신도 갖고 있다. 이러한 이중성은 부단한 변신을 통해 자신을 지키고 가꾸어 가려는 자존본능에서 유래된 것이다.

 

20~30년 전 시중에는 이런 유머가 나돌았다. 이병철을 재정부장, 정주영을 생산부장, 김우중을 마케팅 부장으로 영입하기만 한다면 그 회사는 최고의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자수성가로 단기간에 재벌 대열에 올라선 한국의 입지전적인 기업인의 기질과 강점을 잘 나타낸 말이다. 이들에 대한 학계의 평가도 강한 성취동기, 불굴의 개척정신, 번뜩이는 아이디어, 투철한 상업정신 등을 꼽고 있다. 성공한 기업가 정신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기업가 정신이란 자원제약과 리스크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도전정신을 발휘하여 경영혁신을 통하여 새로운 사업을 일으키는 기업가의 의지를 말한다. 이때 나타나는 무서운 분발심과 집중력, 모험정신, 풍부한 상상력, 이기적 독점 등은 모두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국인의 기질이 되어버린 특성들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특성들이 장점으로 살아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1970년대 국가 경제개발 붐이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산업사회의 새 판을 짜면서 정부는 스스로 경제개발의 주도세력이 되어 가슴 벅찬 구호로 민심을 끌어 모으는 데 성공했다. 수출산업을 육성하고 중화학 중심의 기간산업에 공을 들이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앞 다투어 생겨났다. 일반 농어촌 서민사회까지 잘살아 보세라는 자조정신에 하면 된다는 낙관적 도전정신이 생활 곳곳에서 국민적 잠재력에 불을 질러댔다.

 

경제개발 초기의 경영자들은 몸으로 열심히 뛰는 만큼 성과가 나왔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세계화 추세가 빨라지면서 선진국 등 모든 나라가 뛰어난 CEO의 리더십에 기업의 운명을 맡기는 사례가 확산되고 있다. 유능한 CEO는 글로벌 스탠더드 확산, 경제의 디지털화, 산업의 융합화 등 급변하는 세계 환경에 대한 폭 넓은 지식과 대응력을 갖춰야 한다. 이는 위기관리 능력을 얼마나 갖추느냐를 의미한다. 상상력, 상황 판단력, 결단력, 설득력으로 투자자와 조직 구성원의 신뢰를 얻고 강력한 추진력으로 기업의 미래를 이끌고 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경영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은 기업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는 CEO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한국인의 정치적 동조성은 희망을 주는 리더에 대한 광적인 열기를 통해 자주 나타났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열기를 산업사회 건설에 쏟아 넣는 데 성공한 인물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 회담을 성사시킨 정치적 성과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벤처 열풍으로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모험산업은 한국인의 적성과 부합되는 창의와 도전, 속도와 도박성까지 띠고 있는 동조성이 강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전두환 대통령도 성급하고 변덕스러운 한국인이 깊이 빠져들 수 있는 정보기술(IT)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IT 강국의 꿈은 정보화된 개방사회의 흐름에 맞추어 창조활동과 자유경쟁의 시장논리 활성화에 물꼬를 터주는 순기능도 가져왔다. 그런데 김영삼, 노태우 두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민적 관심과 존경을 얻지 못했다. 그들이 국가 CEO로서 국민의식을 하나로 묶는 가슴 벅찬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인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새로운 CEO상은 정보사회, 글로벌 네트워크 사회의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여기에 국가발전의 동력을 창출하려는 배포 큰 포용력과 꿈, 야망에 불타는 인물이 될 것이다.

 

지금 한국에는 엄청난 힘이 분출되고 있다. 오랫동안 억눌려 왔던 풍부한 감성, 지식욕, 창조, 진취, 풍류적 특성들이 둑이 터진 듯 뿜어져 나오고 있다. 역동적 힘이 국내외 시장과 정치현장에서, 교육현장에서 그리고 호기심과 꿈이 실린 산업현장에서 다투어 꿈틀대고 있다. 뛰어난 CEO는 이 거대한 힘을 신의 축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의 적절하게 밝고 희망찬 놀이마당을 만들어 국민적 열기를 북돋워 주면 이것이 곧 국력이 되어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이끄는 거대한 활화산이 될 것이다.

 

 

백석기 지음

매일경제신문사, 20071월,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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