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가를 지불해야 진장한 투자에 대해서 알게 될까?

왜 대가를 지불해야 진장한 투자에 대해서 알게 될까?

   

 

발로 뛰는 주식투자 : 피터 린치와 뮤추얼펀드의 세계

 

주식시장에서의 성공이 결코 운에 좌우되지 않고, 꾸준한 노력과 정성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이 피터 린치인데, 그는 미국 최고의 뮤추얼펀드 회사인 피델리티의 마젤란 펀드를 운영하여 1977~1990년 기간 동안 미국 내 수많은 주식형 펀드 가운데 1위의 성과(27)를 거둔 인물로도 유명하다. 성공적인 투자비결을 묻는 수많은 투자자들에게 피터 린치는 '단지 열심히 일하고, 많은 기업들을 방문하며, 많은 질문을 하고, 많은 보고서를 읽으라.'라는 말로 일관하는데, 그의 투자방식을 3가지 방향에서 접근해 보자.

 

먼저, 투자자 관점인데, 피터 린치는 주식의 세계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투자자 자신이 연구나 조사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투자를 성공으로 이끄는 길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주식투자는 반드시 집 장만 후에 여유자금이 생길 때 해야 한다. 신용거래를 해서는 안 되고, 선물이나 옵션같이 단기적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파생상품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둘째, 투자를 성공으로 이끄는 투자자의 자질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제하며 견디는 인내력, 자신에 대한 신뢰, 정상적인 상식, 남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 쉽게 흔들리지 않는 냉정한 판단력, 자신에 대한 겸손, 상황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 때로는 정확한 정보 없이도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결단력, 스스로 인간적인 성격이나 육감 따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제력 등이다. 셋째, 일반투자자들은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하고 구체화시킬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하라고 권하고 있다.

 

다음, 투자대상 기업의 조건인데, 피터 린치가 일반투자자들에게 권하는 종목은 기업 내용이 알기 쉽고,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비교적 작은 규모의 회사들이다. 반면 기피해야 하는 종목은 시류에 따라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최고 업종의 최고 인기 주식과, 회사의 풍부한 현금을 바탕으로 자사의 핵심 분야와는 관계없는 분야에 진출하여 이른바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는 기업, 또한 아무리 성장성이 높다 해도 지나치게 PER가 높은 기업, 일시적인 수요확대 및 기업성장으로 인해 단기적으로 연간 50~100% 이상의 신장세를 보이는 기업 등이다.

 

마지막으로 투자환경인데, 피터 린치는 많은 전문가들이 애용하는 경제전망이나 산업별 투자 비중 배분을 하지 않았으며, 계량적인 경제이론과 시장분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거시경제 변수를 예측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투자하고 싶고 관심이 있는 기업의 재무제표를 한 번 더 살펴보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는데, 어쩌면 요즘 말하는 '개별종목의 황제'라는 표현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세계는 넓고 투자할 곳은 많다 : 모비우스와 신흥증권시장

한국을 포함한 신흥증권시장은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치·경제적 불안요소, 유동성 부족 등 투자하기에는 위험요인이 많지만,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라 수익 가능성이 높고, 포트폴리오를 국제적으로 구성하면 효율적인 분산투자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참고로 신흥증권시장의 성장에서 있어 템플턴 펀드와 마크 모비우스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20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신흥증권시장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펀드는 4, 35,000만 달러 정도에 불과했고, 1987년 템플턴이 미국에서 신흥증권시장 투자를 위해 6,000만 달러를 모집했을 때만 해도,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 할지 몰라 고민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이 분야에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던 모비우스는 생소한 시장에 과감하게 투자를 시작했고, 결국 그의 투자전략은 신흥증권시장의 지속적인 성장과 함께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한편 모비우스는 다른 신흥증권시장 전문가와는 달리, 한 시장에 자금을 집중적으로 투자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저평가된 주식을 해당 국가의 전체 증권시황과는 관계없이 사서 모은다. 그러고는 '매수 후 장기 보유'전략을 유지하며, 그 주식이 제대로 평가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다.

 

모비우스는 신흥증권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투자원칙으로 다음과 같은 점을 들고 있다.

첫째, 부단한 노력과 원칙 및 상식에 입각해 투자해야 하고,

둘째, 창조성이 필요한데, 그 이유는 투자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모든 변수를 고려하기 위해서는 다면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셋째, 분산투자를 해야 하고,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

넷째, 위험부담은 필수이고, 가치지향 투자를 해야 한다.

다섯째,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여섯째, 5년 이상 보유해야 하는데, 그가 주식을 매도하는 경우는 더욱 투자매력도가 높은 종목을 발견한 경우, 매수한 종목이 적정 주가수준에 도달한 경우, 또는 내재가치가 급락한 경우라고 한다.

 

한편 모비우스는 한국 시장이 선진시장에 진입하려면, 체력이 튼튼한 중소기업이 많아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또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나아지기는 했지만, 앞으로 좀 더 진전되는 모습이 필요하고, 기업들의 인색한 배당정책도 개선되어야 하며,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완화 노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한다. 리스크 없는 투자는 없다. 남들이 무관심할 때 관심을 갖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에 나선다면, 신흥증권시장은 장기적으로 큰 수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확신한다.

 

투자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 마이클 밀켄과 정크본드

마이클 밀켄은 1969년 드렉셀 해리만 리플리 -1973년 번햄&컴퍼니(Burnham & Company)와 합병- 에 입사한 후, 유능한 직원들이 선호하는 부서였던 기업금융부를 지원하지 않고, 조사 분석 업무부터 시작한 후, 세일즈와 트레이딩 업무를 택했는데, 거기서 그는 낮은 평가를 받거나 아예 평가조차 받지 못한 유가증권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관심과 노력 덕분에 몇 년 후 그는 이른바 '정크본드' 시장에서 잠재적인 이익을 발견하여, 증권시장 '천재'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게 된다. 덧붙이면 그는 보통 정크본드가 우량기업의 채권에 비해 6% 포인트나 높은 이자를 지불했지만, 부도의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고, 일부 채권이 부도가 나더라도 포트폴리오 전체의 수익률은 그 리스크를 보상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드렉셀의 사장에게 정크본드 시장의 높은 잠재적 수익성과 안정성에 대해 논리적으로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결국 정크본드 시장에 대한 매매권한을 부여받았다. 참고로 정크본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유동성 부족이었다. 때문에 드렉셀의 고객들은 대부분 이러한 종류의 채권매수를 꺼렸다. 하지만 밀켄은 고객들의 거부반응에 굴하지 않고 대상기업에 대해 철저하게 연구했고, 그 자료를 토대로 저평가되어 있다고 확신하는 고수익 채권에 투자하도록 고객들을 설득했고, 또 연기금이나 보험회사와 같은 대형 기관투자가들 -당시 기관투자가들은 고금리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저금리 시대에 접어듦에 따라 수익률 제고에 대한 압박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음- 을 대상으로도 끈질기게 설득하였는데, 그런 그의 노력으로 유동성 문제는 점진적으로 해소되기 시작했고, 1977년 초반 밀켄은 정크본드 시장의 25%를 장악하게 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에 단순히 정크본드 시장을 조성함으로써 시작된 밀켄의 천재성은, 1980년대 M&A 붐과 더불어 만개하기 시작했는데, 기업 매수·합병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회사들은 실제 자산가치에 비해 주가가 매우 저평가된 회사였다. 참고로 그 당시 미국 기업들의 증권시장에서의 가치는 자산 가치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시장에서 특정 회사를 매수한 후 이를 분해하여 매각하면, 초과이익이 생기는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1980년대 중반 이후 중소기업이 영업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정크본드보다는, 기업 인수·합병을 노리는 기업이 자금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정크본드가 매우 보편화되었고, 밀켄 역시 이 시장에서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한편 1980년대 미국의 경험을 놓고 그 경제학적 의미와 파장에 관해 상반된 견해가 존재한다. 사실 마이클 밀켄이 1980년대 미국 증권시장에서 벌인 여러 가지 일들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이 전적으로 옳지 않았다는 견해도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밀켄이 1980년대 미국 금융시장에서 새로운 기술과 참신한 금융상품의 개발 및 이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성장에 큰 공헌을 했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투자 천재들의 경연장 : 소로스와 헤지펀드의 세계

헤지펀드는 주로 부자들의 자금을 모아 채권, 부동산, 외환, 선물이나 옵션과 같은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펀드인데,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째, 레버리지를 활용한다. 모든 헤지펀드는 차입금 혹은 파생상품을 이용하여 본래 가지고 있던 금액보다 크게 배팅한다.

둘째, 공매도를 활용한다. 공매도란 주가가 하락할 것을 예상하여 보유하지 않은 주식을 빌려서 먼저 매도하고, 향후 주가가 하락할 때 저가에 재매수하여 이익을 취하는 투자방법이다.

셋째, 철저히 성과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

넷째, 일반 펀드와 달리 환매가 제한된다. 헤지펀드 투자자들은 오랜 기간 동안 자금을 인출할 수 없고, 인출도 정해진 기간에만 할 수 있다.

다섯째, 파트너십 구조로 운영된다.

 

한편 헤지펀드의 대표격인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현재는 퀀텀 기부펀드로 이름을 바꿈)는 창사 이후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는 급성장을 거듭했는데, 소로스는 주가의 주된 변동요인은 진행 중인 '추세'와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편견'의 결합이며, 이들은 주가에 의해 영향을 받고, 그러한 영향은 스스로 강화되거나 수정되기도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참고로 소로스는 3단계 베팅 전략 -첫 번째는 앞날의 흐름을 읽는 탐색과 예측 단계, 두 번째는 예측이 맞는지 실제 투자를 통해 검증해보는 시험베팅 단계, 세 번째는 천문학적 거액을 동원해 시장의 흐름을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초거대 물량을 장악하는 단계- 에 따라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두 번째 시험베팅 단계에서도 일반 큰손들이 투입하는 시험투자 비용의 수백 배에 달하는 거액을 투입하여, 과연 시장이 자신이 예측한 대로 움직이고 있는지 검증한다고 한다. 그리고 일단 여기서 자신의 예상이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아무리 큰 손실을 입더라도 미련 없이 철수하고, 반대로 자신의 뜻대로 시장흐름이 바뀌는 조짐이 보이면, 그때부터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모든 자금을 총동원해 세계 금융계를 뒤집어놓을 정도의 천문학적 거액을 투입한다고 한다.

 

자본주의의 새로운 왕 : 블랙스톤과 사모펀드

사모펀드란 이름 그대로 연기금이나 대학기금, 소수의 부자들로부터 사적으로 자금을 모집하여, 거래소 시장을 거치지 않는 사적인 방식으로, 주로 비상장 주식을 매입하는 펀드인데, 단순히 지분을 매입하여 가격 차이를 노리는 뮤추얼펀드나 헤지펀드와는 달리, 지분의 100% 또는 경영권 획득이 가능한 수준까지 지분을 매입하고, 투자한 기업의 경영에 직접 관여하여 채무 구조조정이나 영업상 경영개선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인 후, 기업공개나 제3자 매각, 다른 사모펀드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챙기게 된다. 투자대상은 저평가,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가족형 기업인 경우가 많지만, 벤처회사나 급속한 성장기에 있는 기업, 그런 기업이 발행한 후순위채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현재 세계 2위 규모의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은 스테판 슈와츠먼과 피터 피터슨에 의해 1985년 설립되었는데, 사모펀드에 대한 인식이 전무했던 초창기에는 자금조달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별다른 기대 없이 방문했던 프루덴셜 보험사의 운용담당 임원이 불쑥 1억 달러를 줄 테니 투자해보라고 하여 최초의 투자를 이끌어내었고, 최초 펀드에는 니코 증권, 메트라이트 생명, 제너럴 일렉트릭, 제너럴 모터스 등이 동참했는데, 블랙스톤은 이 자금으로 USX라는 미국 철강 및 에너지 그룹 - 당시 미국 철강산업은 한국과 일본의 공세로 침체일로에 있었고, 주가는 자산 가치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에서 맴돌았으며, 전문적인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의 공격을 받고 있었음 - 에 투자했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오늘날의 블랙스톤이 있게 한 이정표 역할을 했다.

 

사모펀드가 자금유치, 투자결정, 자금회수를 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펀드의 조성으로, 이를 위해서는 투자자를 모아야 하는데, 투자자는 GP(General Partner)LP(Limited Partner) -GP'업무집행 사원'이라고 하며, 자금의 조달과 운용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하고, LP'한정 파트너'로 중장기적인 이익을 목적으로 펀드에 투자하는 투자자를 말함- 로 나누어진다.

사모펀드는 이렇게 모집한 자금으로 펀드를 조성한 뒤 본격적으로 투자에 나서는데, 이것이 두 번째 단계이고,

세 번째 과정은 기업가치 증대 과정인데, 사모펀드 초창기에는 단기적인 채무조정이나 자산매각 등에 치중했으나, 근래에는 기업의 전반적인 체질을 개선해나가는 전략에 치중하고 있다.

네 번째는 투자자금 회수인데, 기업공개, 재상장 등 거래소 시장에 주식을 매각하는 방법, 전략적 투자자나 2차 사모펀드에 매각하는 방법, 종업원 지주제를 통한 주식 매각, 저금리의 이점을 이용해 채권을 발행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다섯 번째는 투자자에게 투자원금과 이익을 분배하는 마지막 과정인데, 보통 LP에게 5~10%의 이익을 보장해준 후, GP에게 돌아갈 몫을 계산하는 데 GP의 몫은 일반적으로 순이익의 20% 수준이다. 참고로 아직 한국에서는 사모펀드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가족경영 중심의 기업이 많은 상황에서, 다양한 첨단 경영기법의 등장으로 투자자들의 욕구가 높아지면서, 한국 금융시장에서도 앞으로 사모펀드의 역할이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생각된다.

 

뚝심 있는 가치투자의 승리 : 워렌 버핏과 소수 장기투자

투자세계에서 워렌 버핏은 전설이자 신화이다. 보잘것없는 수준에서 시작하여 현재까지, 41년 간 9.11 테러로 손실을 기록한 해를 제외하곤, 모두 플러스 수익을 내며, 총수익률 3,000, 연평균 수익률 21.5%라는 놀라운 수익을 기록했다. 여기서 더 놀라운 점은 그가 남들이 모르는 어떤 비법을 이용하여 그러한 성공을 거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계산과 상식, 인내, 그리고 모든 투자자들이 쉽게 할 수 있는 기초적 분석을 통해서 이뤄냈다는 것이다. 참고로 워렌 버핏은 시장가치와 관계없는 기업의'내재가치'를 추정하고 재무제표를 정확히 해석하여, 시장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주식을 발견하는 방법을 벤저민 그레이엄 교수로부터 배웠는데, 그레이엄의 투자 철학은 애널리스트의 역할 -기업의 내재가치보다 저평가된 주식을 선별하는 것- 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주식이 내재가치에 비해 저평가되는 것은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첫째는 단기적으로 실적이 악화된 경우인데, 이는 기업의 기본적인 영업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노사분규나 소송, 부실자산 매각 등의 요인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매출이나 이익이 감소할 때 발생한다. 다른 한 가지 요인은 소외된 기업 현상인데, 이는 신규로 상장되거나 혹은 오랜 기간 동안 애널리스트들의 관심을 받지 못해 시장에서 잊혀가고, 그로 인해 유동성 부족과 함께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이다.

 

한편 워렌 버핏의 투자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순수하게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자산인 순자산가치의 3분의 2 이하로 거래되는 종목을 매수하거나, 역사적 기준에서 볼 때 상당히 낮은 PER 수준을 나타내는 종목을 매수하는 것이다. 또 그는 주식은 기업에 대한 소유권이기 때문에, 주식을 사는 것은 바로 그 사업을 사는 것이므로, 각 사업에 따라 적용되는 원칙들을 고려하여 그에 맞게 투자할 때 비로소 성공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곤 했다. 즉 그는 투자를 결정할 때, 증권시장이나 경기변동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사업 자체만을 보고, 대부분의 투자가가 단지 주식시세만 지켜볼 때 그는 기업의 내재가치를 주시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그는 남들이 두려워할 때 욕심을 내고, 남들이 욕심을 낼 때 두려워하며, 길게 투자함으로써 돈과 명예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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