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거짓말

아름다운 거짓말

 

1.인도 농민을 위한 사회적 기업, IDEI

처음, 인도에 오기 전 IDEI의 주력 상품 중 하나인 페달 펌프 사진을 보고 한참을 웃었던 게 생각이 난다. 대나무로 만든 허술한 대롱들을 얼기설기 이어 놓은 펌프 위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농부 아저씨 사진만 보고서는 IDEI가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 포드 재단에서 원조를 받는다는 잘 나가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찾아간 IDEI 본사는 놀라울 정도로 감각적이었고, 사당기 사장은 탐방단과의 대화를 편안하게 이끌었으며, 회사의 최고운영책임자인 수레쉬 씨가 IDEI의 상품을 꼼꼼히 설명해주었다.

 

IDEI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엿새 뒤 인도 남부 방갈로르에서였는데, 우리가 이 도시를 찾은 것은 순전히 사당기 사장의 소개 덕분이었다. 그는 탐방단에게 방갈로르를 찾을 것을 조언해주었고, 우리를 위해 이곳 근처에 사는 쿠마르라는 IDEI의 카르나타카 주의 총책임자에게 우리의 여행을 돕도록 했는데, 쿠마르 씨는 우리를 방갈로르 북쪽으로 40킬로미터 떨어진 남부의 툼쿠르 지역으로 인도했다. 참고로 탐방단이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이곳의 농민들이 IDEI의 기술과 이 지역의 총책임자인 쿠마르 씨에게 얼마나 큰 믿음과 기대를 갖고 있는지 금세 알 수 있었다.

 

한편 IDEI2001년까지 IDE(International Development Enterprises)의 인도 대표 연락 사무소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1, 인도 현지의 독립법인으로 전환한 IDEI는 자신만의 마케팅 채널을 개발해 단순하지만 환경오염을 막아주는 소규모 관개시설과 농기계를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다시 태어났다. 참고로 IDEI는 인도 농촌의 생산성이 지극히 낮은 구조에 처해 있다는 점을 직시했고, 생산성이 낮은 원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관개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래서 관개 시설을 판매한다는 전무후무한 아이디어를 실행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 인도 농촌에 없어서는 안 될 케이비 드립과 페달 펌프이다.

 

케이비 드립은 인도어로 크리샥 반드후, 농부들의 친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의 원리는 펌프 작용을 통해 지하수를 끌어올린 후에 관개수로를 이용해 끌어올린 지하수를 농지에 공급하는 것이다. 이처럼 간단한 원리를 가진 관개시설의 발명으로 인해 인도의 농민들은 농업 생산성에 가장 큰 요소인 관개시설을 직접 소유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케이비 드립은 단순히 도시인에 비해 부족한 농촌의 소득을 지원하는 소극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농촌의 생산력 향상을 담보하는 생산 수단의 질적 향상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농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성과도 대단하다. 케이비 드립은 지난 1997년 판매 이후 지금까지 인도 전역에서 연간 12만 대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구매한 농민들은 자신이 원할 때면 언제든지 용수를 공급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우기가 아닌 건기에도 농사를 지음으로써, 이전보다 단위 토지 당 75퍼센트가 넘는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수 있었다고 한다. 한편 케이비 드립이 인도 농촌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바로 입소문이었는데, 실제로 지금 케이비 드립은 구매자의 적극적인 입소문 덕분에 인도 농촌 전역에 퍼지고 있다. 다른 요인으로는 가격을 들 수 있는데, 관개 시설 시장의 경쟁 상품에 비해 무려 80퍼센트 이상 저렴한 가격이어서 가난한 농부들이 구매하는 데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페달 펌프 역시 40루피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으로 시장에 공급되고 있다. 그렇다면 작은 기업에 불과한 IDEI가 다른 기업에 비해 70~80퍼센트나 저렴한 가격 파괴를 가져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사당기 사장은 그 비결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기존 관개시설 상품들의 수명이 6년이라면, IDEI의 제품은 2년입니다. 적어도 수명만 놓고 본다면 농민들이 IDEI의 제품을 선택할 이유는 없는 것이죠. 하지만 IDEI의 제품이 월등이 싸기 때문에 우선 저희 제품을 구매하고 몇 년 후 더 비싸고 좋은 제품을 사려 하는 것이죠. 농민, 즉 소비자로 하여금 제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가장 싼 가격을 유지한 정책이 먹힌 셈입니다.

   

IDEI가 인도 농촌에 미치는 영향 중 또 다른 하나는 관개 시설 상품을 판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회사의 지역 담당자를 채용, 육성함으로써 유능한 농업 전문가를 길러낸다는 것이다. IDEI의 지역 담당자들은 자사의 상품을 각 지역에 공급하는 책임 딜러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애프터서비스는 이들의 몫이다. 그리고 지역 담당자는 농민들과 함께 한 해의 농사 계획을 상의하고, 상품성 작물과 자급성 작물을 구분하며, 단기적으로 소득을 가져다주는 꽃과 약용 작물 등을 재배할 것을 조언해준다.

 

IDEI가 이처럼 혁신적인 딜러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던 데에는 IDEI와 케이비 드립 판매자들의 동반자 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보충 설명하면 IDEI의 딜러들은 주로 각 지역에 위치한 소규모 상점과 판매상들이 맡고 있는데, 모두들 해당 지역을 샅샅이 알고, 지역민들과 친밀한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제품의 제조, 운송, 판매 등 전 과정을 지역의 기업에게 아웃소싱하기로 한 사당기 사장의 결정도 큰 몫을 했다. 참고로 사당기 사장은 딜러 중 약 10퍼센트가 지역의 사업가가 아닌, 순수한 자원봉사자라고 강조한다. 이는 IDEI의 딜러로 일하는 게 단순히 관개시설 등을 농민에 판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통해 인도 농촌 지역이 혁신적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에서 의미를 찾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암시한다.

 

참고로 IDEI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가격 혁명은 이 회사가 사회적 기업이었기에 가능했다. 보충 설명하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 기업들에게 농민을 대상으로 한 관개시설 시장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제품을 유통하는 데 적잖은 비용이 들고, 이익도 적게 나는 사업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IDEI는 이 과정을 통해 사회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믿음 - 관개시설 상품을 통해 저소득층 농민의 필요를 채워주고, 농민들은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이에 따라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자본의 선순환 구조에 진입할 수 있다는 확신 - 을 갖고 있었다.

  

2.건강을 파는 기업, 힌두스탄 유니레버

힌두스탄 유니레버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절망이라는 이름으로 치환되는 이들에게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오는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다.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인 유니레버의 인도 자회사인 이 기업은 농촌 지역 활동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통해 빈곤층위생과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우리는 힌두스탄 유니레버의 LBSC(Lifebouy Swastya Chetna, 힌디어로 건강을 일깨우다라는 의미임. 참고로 빨간 사각형의 라이프부이는 힌두스탄 유니레버가 생산하는 비누로, 인도 시장의 65퍼센트 이상을 점유하고 있음) 현장 방문 교육 프로그램을 체험하기 위해 하이데라바드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예라군라파하드 마을을 찾았다. 아직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마을은 정부에서 설치한 단 한 개의 램프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아무튼 지난 2002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LBSC 프로그램은 2006년 한 해에만 2백여 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모두 28천 개 마을, 연 인원 7천 만명에게 교육을 실시했을 정도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우리가 뭄바이를 찾던 날은 유니레버사가 예라군라파하드 마을을 두 번째 방문한 날이었다. 이날 교육의 주인공은 이곳의 어머니들, 오길비 앤 매더의 현장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모한 씨는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이유를 어머니들이 누구입니까? 어린이들의 습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존재이죠. 어린이들은 엄마를 보고 배우니까요라는 말로 설명했다.

 

모한 씨의 얘기를 열심히 듣고 있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 암마(Amma, 힌디어로 엄마라는 뜻)들 이곳을 봐주세요라고 유니레버에서 파견나온 위생 전문가가 말을 시작한다. 곧 이어 노래 가사를 알려주고, 엄마들은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른다. 힌디어 방언인지라 노랫말의 의미는 잘 몰랐지만, 관계자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비누로 손을 씻게 하자라는 내용이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함께 현장을 탐방했던 모한 씨는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수천 아니 수만 명의 사람들을 살리는 획기적인 프로젝트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자신 역시 수년 째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비누를 사용하는 좋은 습관을 길러주고, 그만큼 지역 주민들의 호응이 뜨거워 보람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LBSC라는 멋진 아이디어는 대체 누가 만든 걸까? 궁금한 마음에 기획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이 회사의 직원은 오길비 사의 프로그램 기획자인 아비니쉬 씨를 찾아가라고 말했다. LBSC 프로그램은 힌두스탄 유니레버의 제안에 의해 오길비 사가 기획부터 프로그램 운영까지 전체적인 진행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를 만난 아비니쉬 씨는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자선 사업이 아니라, 하나의 상품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LBSC의 기획 및 운영 과정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세심하게 진행되는지 정성스러운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확인시켜주었는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오길비 사는 인도 저소득층에게 적합한 CSR 프로젝트를 위해 수개월에 걸쳐 시장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 발견한 키워드는 바로 농촌많은 인구, 그리고 어린이였다. 참고로 인도의 10억 인구 중 76천 명이 농촌에 살고 있고 그들 대부분이 저소득층인데, 이들은 기업에 있어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새로운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의 소득이 조금이라도 늘어난다면 생활필수품을 파는 유니레버와 같은 기업으로서는 새로운 소비자 계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오길비 사가 LBSC를 기획하면서 가장 중시했던 것은 비누를 사용해 손을 씻는 것이 왜 효과적이고 위생적인지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있다고 판단했는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확실한 타깃을 정하라 : LBSC 프로그램은 단계별 방문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프로그램 1단계는 어린이, 프로그램 2단계는 어머니, 그리고 프로그램 3단계는 마을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암마를 공략하라 : 어머니는 어린이의 습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다채로운 이벤트를 펼치고 있다. 위생 의식을 일깨워주기 위해 가정을 직접 방문하고, 비누를 즐겨 사용하는 가정에는 어머니의 이름이 새겨진 문패를 달아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보라, 만져라 : LBSC의 방문 프로그램은 시각적, 촉각적 효과를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카드나 형광 물질을 손에 묻히는 실험도구, 세균과 라이프부이(비누)맨이 싸우는 인형극 등이 그것이다.

전문가를 동원해 신뢰감을 형성하라 : LBSC의 방문 프로그램은 HDO(Health Development Officer)HDA(Health Development Assistant)라 불리는 전문가들이 위생 교육을 전담한다.

눈과 눈이 마주치는 교육을 하라 : 힌두스탄 유니레버가 재정적인 부담을 감수하면서 교육 요원들을 현장에 직접 파견하는 이유 역시 커뮤니케이션 전략과 연관되어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만큼 효율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라 : LBSC 프로그램은 한 달에 한 번씩, 3~6개월에 걸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매달 다른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것도 이 프로그램의 자랑이다. 동시에 프로그램을 마친 마을에는 뉴스레터와 각종 홍보물 등을 꾸준히 보내줌으로써 프로그램이 단순히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3.어둠에 빠진 세계를 구하라, 네스트

아이쉬와리아는 네스트의 설립자인 바르키 사장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소형 태양광 램프다. 이 제품은 케로젠 램프(Kerosene Lamp, 이 램프는 이산화탄소와 다이옥신 같은 인체에 매우 유해한 물질을 뿜어낸다)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대부분의 인도의 빈민들이 즐겨 사용하는 생명과 건강에 치명적인 케로젠 램프에 비해 5배 이상 밝고, 화재의 위험이 전혀 없으며, 25년의 수명을 갖고 있고, 태양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환경 친화적이고, 실내 공기를 오염시키지도 않는다.

 

탐방단은 오전 10시 네스트 본사를 찾았다. 안내를 받아 사무실에 들어가니 턱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중년 남자가 반갑게 악수를 권한다. 바로 네스트의 설립자 바르키 씨였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아이쉬와리아를 만들게 된 배경을 물어보았더니, 바르키 사장은 제가 10살 소년이었을 때였어요. 어느 날 밤, 우리 가족이 살던 작은 마을에 불이 났어요. 그날 밤 진화 작업을 마치고 우리 가족들은 생후 15일 밖에 안 된 사촌 동생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사촌의 어머니 또한 화재로 인한 합병증으로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건 그날의 화재가 당시 저희 집은 물론 이웃에서 널리 사용하던 케로젠 램프가 침대에 떨어져서 일어났다는 거였습니다라고 말하곤, 그날의 비극적인 화재 사건을 계기로 공학자가 되어 케로젠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이쉬와리아는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을까? 바르키 사장은 네스트를 설립하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가난한 사람들도 구입할 수 있는 태양광 램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태양광 램프를 만들기 위해 고려해야 할 점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우선 대체로 교육 수준이 낮은 빈민들이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용 방법이 쉬어야 했고, 안전하고 잔 고장도 없는, 그러면서도 성능이 보장되는 무공해 태양광 램프를 만들어야 했다. 또 가난한 사람들도 구입 가능한 램프여야 했다. 아이쉬와리아는 바로 이러한 고민 속에서 지난 2001, 네스트가 연구 개발에 착수한 지 3년 만에 탄생했다.

 

현재 아이쉬와리아는 개당 38달러의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 일반적인 태양광 램프와 비교할 때 혁신적이라는 표현을 써도 좋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다. 그렇다면 네스트는 어떤 방법으로 이 가격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었을까? 태양광 램프를 최대한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해서는 우선 램프의 크기를 줄였을 테고, 불필요한 기능은 모두 제거하는 등 부품을 최소화했을 것 같았다. 생산을 위한 부품이나 원자재 역시 대량 주문을 통해 단가를 낮추었을 것이다. 우리의 추측이 얼추 맞는 듯 바르키 사장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 맞아요. 비용을 최소화해야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램프를 파는 게 아니라 빚을 팔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아이쉬와리아는 거의 마진이 남지 않아요. 네스트는 다른 사업 영역에서 얻는 마진으로도 충분히 유지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이 38달러가 아직도 비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루에 1,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38달러는 엄청난 금액이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인도의 빈민들이 38달러를 주고 램프를 사는 것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바르키 사장은 예상 밖의 쉬운 대답을 내놓았다. 인도의 저소득층 가정에서 매일 밤 세 시간을 케로젠 램프를 사용한다고 가정할 때, 매달 소모되는 케로젠은 약 7리터 정도, 7리터의 케로젠을 구입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100루피라고 한다. 인도의 저소득층 가정이 1년에 약 12백 루피의 비용을 케로젠을 구입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답은 간단하다. 38달러는 인도 돈으로 16백 루피다. 케로젠 램프를 사용하는 데 드는 비용을 고려한다면 불과 2년이 못 되어 아이쉬와리아를 구입한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네스트는 이 제품을 8개월 동안 월 2백 루피, 또는 16개월에 월 100루피를 나누어 내는 장기 할부를 실시하고 있다. 한 번 구입하면 25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아이쉬와리아의 수명을 감안할 때 너무도 저렴한 가격이 아닐 수 없다.

   

4.소액 무담보 대출의 신화, 그라민 은행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그라민 은행은 하루에 1~2달러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무담보 소액 대출(Micro Credit) 제도를 운영해, 그들이 빈곤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6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라민 은행의 홍보 담당자인 후세인 씨를 만났다. 후세인 씨는 탐방단을 바숀 가지푸르지 역 인근에 자리한 코따 마을로 인도했고, 그라민 은행에서 지금까지 16년간 대출을 받고 있다는 코히눌 악터 씨와 10년째 대출을 받고 있는 그녀의 여동생 뷰티 악터 씨를 소개했는데, 두 자매는 함께 미싱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16년 전, 우리 마을에 처음으로 그라민 은행이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어요. 당시만 해도 그라민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끌려간다느니, 기독교로 개종해야 한다느니 등 좋지 않은 소문이 돌았었거든요. 게다가 여성들에게만 대출을 해준다고 하니 더 무서웠죠. 그런데 수개월이 지났는데도 그라민 은행으로부터 강요를 받거나 끌려가는 사람이 없더군요. 기독교로 개종을 강요하지도 않았고요. 때마침 저는 돈이 필요해서 어디 한 번 돈을 빌려 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어느덧 16년 째 인연을 맺고 있네요. 그라민 은행에서 3천 다카를 대출받은 그녀는 바로 미싱을 구입했는데, 남편도 재단사였던지라 손쉽게 미싱 일을 배울 수 있었고, 자신의 여동생에게도 그라민 은행을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두 자매는 나란히 미싱 일을 하며 지금은 옷 가게와 식당을 운영하는 어엿한 자영업자가 되었다고 한다. 두 자매를 뒤로 하고 우리는 옷 가게를 운영한다는 나시마 악터 씨를 만났는데, 그녀 역시 결혼 이후 말 그대로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이 많았지만, 그라민 은행 덕택으로 지금은 옷 가게를 운영하며 작은 양계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통계에 따르면 방글라데시는 약 1억 명이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른다. 문맹률이 전체 인구의 65퍼센트에 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여성 문제라고 한다. 방글라데시는 전통적으로 푸르다(Purdah)라는 관습이 있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만성적으로 가정 폭력과 성 차별을 받고 있는데, 이 나라의 여성들에게 그라민 은행은 구세주와 같은 존재라고 한다.

 

후세인 씨가 우리를 데리고 간 또 다른 곳은 그라민 은행의 바숀 가지푸르 지점이었는데, 압둘 하이 지점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30년 간 그라민 은행은 방글라데시의 빈곤, 그중에서도 여성들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려서 생활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일반 은행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빌려주지 않기 때문이죠. 여성 문제 역시 여전히 심각하고요. 그래서 제 손으로 한번 해결해보자 하고 그라민 은행에 뛰어들었습니다. 이어 하이 지점장은 우리에게 그라민 은행이 어떻게 설립되었는지 열과 성을 다해 설명해주었다. 한국에서 이미 그라민 은행에 대해 사전 조사를 마친 우리였지만, 그의 열정을 막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은행의 설립자인 무하마드 유누스는 당시 치타공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이자 학과장으로 있었어요. 그때 그는 방글라데시에 몰아닥친 엄청난 기아의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방글라데시 전역에서 10만 명 이상이 사망해 사방에 시체가 넘쳐 났다고 하니 그 끔찍함이란. 유누스는 이처럼 믿기 힘든 현실을 체험하며 강단을 떠나 마을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강단을 떠난 유누스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자신이 교수로 재직했던 치타공 대학 근처의 작은 마을 조브라였다. 그는 이곳에서 마을 사람들의 현실을 보고 듣게 된다. 그중에서도 그를 가장 충격에 빠뜨렸던 건 고리 대금업자들의 횡포였다. 42가구로 이루어진 마을 사람들 전체가 기술과 자본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인생을 저당 잡힌 채 비참한 삶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유누스가 처음부터 은행을 설립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빈곤에 신음하는 이들을 위해 아무도 나서지 않는 현실이 그에게 은행을 직접 세우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결국 1983102, 마을 은행이라는 의미를 가진 그라민 은행이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조브라 마을의 42가구에 자신의 돈 27달러를 빌려준 지 10여년 만이었다. 지금 유누스를 비롯한 15천여 명의 그라민 은행 직원들은 방글라데시가 직면한 빈곤과 여성 문제를 해결하는 전도사로 나서고 있다. 은행의 총대출자는 20075월을 기준으로 721만 명, 총 예금액은 48천만 달러, 지점 수는 2,431개에 달한다. 방글라데시 전 국토의 94퍼센트에 이르는 8만여 개의 마을에서 그라민 은행을 만날 수 있다.

 

그라민 은행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우리는 하이 지점장의 하루 일정 속에서 은행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하이 지점장은 매일 아침 9시 지점 산하의 센터(Center) 회의에 참석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오전에 몇 개의 센터 회의에 참석한 후에는 센터 매니저들과 각 그룹의 대출 신청서(Loan Proposal)를 검토한다. 검토를 마치면 센터 매니저들은 대출을 신청한 그룹 회원의 집을 방문해 그들이 대출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검토한다. 이쯤에서 센터나 그룹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궁금해진다. 다행히 하이 지점장이 우리의 의문을 일거에 해결해주었다. 그라민 은행은 그룹 단위로만 대출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룹이란 SHG(Self Help Group, 스스로 돕는 모임)라고 불리는데, 이 그룹은 은행에서 대출을 희망하는 5명의 대출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그룹 회원들은 일종의 공동체가 되어 함께 대출 계획을 세우고, 대출 신청을 하는 등 서로 연대보증을 서게 됩니다. 센터란 바로 이 그룹을 조직하고 관리하는 일을 맡는다. 일반적으로 한 개의 센터는 8개의 그룹을 관리한다. 사실 지구-지역-지점-센터-그룹으로 이어지는 그라민 은행에서 그룹은 최하위 구조이다.

 

그렇다면 그라민 은행이 그룹 단위로 대출을 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누스는 자서전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개인이 아닌, 그룹에게 대출을 하는 게 낫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보충 설명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적 경험이 일천해 혼자서는 계획도 잘 세우지 못하고 실천력이 부족하지만, 그룹을 지어 행동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경쟁심도 생겨 실천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참고로 그라민 은행의 그룹 대출 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대출은 개인 명의로 이루어지지만, 상환에 대한 책임은 공동으로 진다는 것이다. 결국 한 번 대출 그룹으로 모인 순간 이들은 이해와 운명을 함께 하는 공동체가 되는 셈이다. 물론 그룹 회원들이 그라민 은행의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했다고 해서 법적인 책임을 지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라민 은행의 모든 대출자들은 자신이 속한 그룹에서 주 1회 정기적인 모임을 가져야 하는데, 여기에는 가난이란 돈으로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은행 측의 신념이 배어 있다. 실제로 이들은 모임을 통해 서로의 생활을 돌아보고, 어려운 점을 나누고, 함께 토론하면서 서로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도 모색하고 있다.

 

넥스터스 지음

북노마드, 200812월,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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