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도전’과 ‘마르지 않는 열정’

나를 뛰어넘는 도전

 

1. 내 안의 희망 DNA를 깨우는 비결

▷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 - 무엇이 보석을 만드는가?

한 여자가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부러울 것 없는 여자다. 젊고 아름다우며, 매력적인 남자 친구와 만족스런 직업을 가졌다. 하지만 모험도 열정도 없는 일상에 대한 회의가 삶의 의욕을 잃게 만들었다. 자살이 미수에 그친 후 의사가 뜻밖의 말을 한다. 그녀가 치명적인 병에 걸려 있고 살날이 고작 일주일 남았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여자는 처음으로 가슴속에서 뜨겁게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느낀다. 결코 경험해 보지 못한 강렬한 생의 의지였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줄거리이다. 작가도 세 차례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투옥 생활까지 했던 불행한 시절을 보냈다. 또한 소설 속 주인공처럼 군사 정권에 의해 죽음의 문턱에 이르고 난 후 비로소 삶에 대한 의지를 갖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내면에 빛과 같은 존재가 나타나는 것을 경험했다. 세상 모두에게 버림받아 아픈 순간에도 하나님은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믿음은 이후 코엘료 작품의 주요 주제가 되었다.

 

불행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두 가지가 있다. 불행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행에 맞서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해 마침내 불꽃을 활활 피워 내는 사람이 있다. 때로는 포기가 더 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포기하는 마음은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일단 시작하면 그 자체가 계속해서 새로운 힘을 준다. 그리하여 고난의 끝에 이르면 연금술사가 찾는 보물처럼 빛나는 성취를 이룰 수 있다. 아름다운 여정이 되는 것이다.

 

코엘료의 연금술사는 양치기 청년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묘사한 작품이다. 하지만 소설은 보물 자체보다 그것을 찾으려는 꿈과 소망, 그 꿈과 소망을 찾아가는 여정이 오히려 눈부신 순금의 시간이라는 점을 말해 준다. 진정한 연금술은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는 방식이고, 만물과 통하는 우주의 언어를 꿰뚫어 하나에 이르는 길이며, 자아의 신화를 찾는 여정임을 보여주고 있다. 여정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망설임을 버려야 한다. 이 길의 끝에 아무것도 없으면 어쩌나 고민하지 말아야 한다. 여정 자체를 즐겁게 여겨야만 과정이 아름답고 실현 가능성도 높아진다.

 

진수 테리의 신 경쟁력 - 세상을 움직이는 새로운 힘

시몬 드 보부아루는 2의 성에서 여성이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성은 사회적, 경제적 세력들의 산물에 의해 가치 평가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미래는 여성의 것이라고 단언한다. 21세기적 특성으로 인해 비즈니스, 교육, , 의학, 정부, 시민 단체 분야까지 미래 세상은 여성적 마인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언어 및 비언어의 단서를 읽을 수 있는 능력, 섬세한 감수성, 인내심,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능력, 네트워킹과 협상에 뛰어난 능력, 협력과 의견일치를 선호하는 태도 등을 든다. 헬렌 피셔는 여성은 경제 및 사회생활에서 1의 성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 100대 여성 기업인에 선정된 진수 테리는 한국계 비즈니스 우먼이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녀는 지방 대학을 졸업한 뒤 의류업을 하다 남편 샘 테리를 만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며 노력했지만 성공의 길은 멀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7년간 일하던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다. 그녀는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했지만 상사의 말은 달랐다. 엔지니어로서 일도 잘하고 성과도 좋지만 당신의 얼굴에는 미소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랫사람이 따르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이후 그녀는 자신의 문제점을 개선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날부터 얼굴 표정을 부드럽게 바꾸기 위해 거울을 보면서 다양한 표정과 웃는 연습을 했다. 몇 달을 연습하자 그토록 딱딱하게 굳어있던 얼굴이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얼굴뿐 아니라 마음까지 밝게 변화되어 있었다.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경영자가 직원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고, 직원이 회사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덕목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이다. 그녀는 이런 부분에 전문적인 컨설팅 회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스로 그 일을 맡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경영 컨설팅 회사의 CEO가 되었다.

 

현재 그녀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도시를 다니며 펀(Fun) 경영을 전파하고 있다. 진수 테리는 이제 재미있는 인물, 재미있는 기업이 성공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기업이나 개인이 권위를 버렸을 때 진정으로 일체감이 생기며, 조직 안에 즐거움이 살아 숨 쉬도록 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현재 미국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컨설팅 강사다. 그녀의 열정적이면서도 인간 중심의 펀 경영 철학에 모두 찬사와 긍정을 보내고 있다.

 

드림 소사이어티의 특징 중 하나는 재미와 감성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는 현재까지 무력, 권력, 물질이 지배해왔다. 수렵, 농경, 산업 시대에는 육체노동이 필요하므로 남성의 힘이 곧 사회 권력이었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비스업에 종사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아이디어나 창의성이 육체적인 힘보다 중요해졌다. 앞으로 드림소사이어티 시대에는 문화, 정신, 부드러움이 세계를 움직이는 핵심이 된다. 따라서 앞으로는 여성성이 경쟁력이 될 것이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직장에서 차별대우를 받거나 승진 탈락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노하기에 앞서 커다란 변화의 물결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식, 정보, 네트워크, 수평적 조직 문화, 유연성, 상상력, 감성, 협력 등을 필요로 하는 사회는 여성이 실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시대다. 새로운 시대를 맞아 여성이 우선 할 일은 실력을 갖추는 것이다. 또한 일터에서 여성하고만 어울리던 습관을 버리고, 남성을 좋은 동료이자 친구로 받아들이면서 진지한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제 미래는 여성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2. 1%의 의지가 이끄는 99퍼센트의 도전  

인도 제약회사 란박시의 성공전략 - 비즈니스에도 통하는 무임승차

1961년 설립된 란박시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인도의 제약 회사(세계 10)이다. 연간 1조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인도의 국민 소득이 1인당 500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성과다. 또한 세계화를 적극 진행해 49개국에 진출한 상태이다. 해외 시장에서 70%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데 해외 시장 비중이 해마다 높아져 인도의 첫 번째 다국적 기업이라 불린다. 그렇다면 란박시의 성공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부족한 것의 힘을 활용한 전략이었다.

 

동사가 해외 진출을 결정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었다. 정부의 약품 지정가 정책 때문에 내수 시장은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서아시아 시장에 진출했다. 정부 통제가 미치지 않기 때문에 내수 시장보다 4~6배 비싼 가격에 제품 판매가 가능했다. 당시 동사는 선발 주자와는 반대로 세계화 전략을 추진했다. 일반적으로 제약 회사의 발전 단계는 연구, 개발, 엔지니어링 순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기술 모방 단계에서는 연구 개발 역량이 열악하기 때문에 역순의 전략을 취했다. 제품 및 생산 기술을 정착시키는 엔지니어링에 집중한 다음 연구에 이르는 전략을 통해 기술적인 약점을 극복한 것이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후발 기업이 선발 기업을 추격하려면 지식을 습득하고 학습하고 흡수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이 지식의 결합 능력이다. 란박시는 성장을 위해 해외 시장 개척이 절실함을 깨닫고, 이를 위해 조직을 구성하고 인력을 충원했다. 이 과정에서 후발 주자가 취할 수 있는 모방과 학습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후발주자의 이익 전략을 채택함으로써 선발 주자들을 넘어설 수 있었다. 후발주자의 이익 전략은 선발 주자가 부담해야 하는 시장 개척과 제품 개발에 따르는 위험과 비용을 회피하여 선발기업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전략으로 근래 들어 각광받고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있다. 세상일이란 앞선 것 같으나 어느새 뒤에 서 있고, 뒤진 것 같으나 앞서 있는 법이다. 따라서 뒤처졌거나 출발이 늦었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비즈니스 세계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모방하고 학습할 수 있으며 무임승차의 효과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이 가치는 내공을 쌓은 사람만이 탈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따라잡으려는 의지와 새로운 아이디어, 그리고 선발 주자가 미처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느냐 하는 것이다. 부족할 때, 늦게 시작할 때는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남다른 눈을 갖게 된다.

 

코카콜라 로버트 우드러프의 1% 몰입 - 콤플렉스를 넘으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원래 코카콜라는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란타에서 약국을 경영하던 존 S. 펨버턴이 만든 소화제 대용 음료였다. 이것을 캔들러라는 사업가가 2300달러에 사업권을 사들여 음료 사업을 시작했다. 캔들러는 코카콜라를 애틀란타 최고의 음료로 만든 후 사업권을 2500만 달러에 팔았다. 그것을 산 사람이 어니스트 우드러프였고, 매사 말썽만 일으키던 로버트 우드러프가 그의 아들이었다.

 

애틀란타 근교 부촌에서 자란 로버트 우드러프는 고등학교 때 낙제를 거듭하다 끝내 쫓겨나고 말았다. 아버지가 남자답게 키우기 위해 보낸 군사 학교에서도 적응하지 못했다. 마지막 기대를 걸고 보낸 에모리 대학에서도 추방당했다. 젊은 시절 로버트는 학교를 싫어했고, 아버지와 멀리 떨어져 인생을 개척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유리 공장에서 일당 60센트를 받고 삽으로 모래를 퍼 담는 일부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는 무능력한 아들이었지만 그는 화이트 모터스라는 회사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했고 아버지와의 갈등에 억눌려 발산되지 못하던 재주를 계발해 그 기량을 맘껏 발휘했다. 마침내 그는 화이트 모터스의 부사장직에 올랐으며, 중견 기업의 후계자로 지목되는 위치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로버트가 성공을 거듭하는 동안 코카콜라는 경영 위기를 맞고 있었다. 미국 시장에서는 충분한 명성을 쌓았지만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이 여의치 않았다. 코카콜라 세계화라는 숙제를 두고 아버지는 아들을 떠올렸다. 아버지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받을 당시 로버트는 화이트 모터스에서 연봉 85천 달러를 받고 있었다. 아버지가 제시한 연봉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그는 돈에 개의치 않고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사업 능력을 키우며 자신감을 회복한 그의 바람은 코카콜라의 경영 책임자가 되어 아버지에게 자신의 능력을 맘껏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통제에서 벗어나면서 그는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했다. 늘 부족하다고 여겼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1%의 잠재력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끈기 있는 도전을 통해 그 힘을 99%까지 끌어올린 다음, 마지막 1%의 몰입으로 성취의 에너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에너지로 지속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로버트는 특히 마케팅 분야에서 능력을 보였다. 나의 꿈은 내 세대에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코카콜라를 한 잔이라도 맛보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는 늘 코카콜라를 보다 많은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했다. 당시는 2차 세계 대전 중이었는데 로버트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오히려 세계화의 발판으로 삼았다. 우선 모든 전장에서 단돈 5센트면 코카콜라를 사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전투 지역에 생산 시설을 갖추고 특별히 기술 감찰관을 파견했다. 군인들은 맥주 대신 코카콜라를 마시며 갈증을 해소했다. 전쟁 마케팅의 효시인 셈이다. 또한 그는 애국 마케팅을 통해 코카콜라는 위대한 미국인의 국민 음료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그는 사업 비결을 물어보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혈관 속에 흐르는 것은 피가 아니라 코카콜라입니다. 그렇다. 그는 모든 사람이 코카콜라를 맛보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의 희망대로 오늘날 코카콜라는 아프리카 사막에서 중국에 이르는 전 세계에서 팔리고 있다. 그의 비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아버지의 성취에 기대거나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잠재력 계발을 방해하고 진정한 경쟁력을 저해할 뿐이다. 우리는 로버트 우드러프에게서 안주하지 않는 용기와 도전하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

 

3. 역발상의 또 다른 이름은 창조 

중동지역에 판 파세코의 석유난로 -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역발상의 눈

CNN에 전 이라크 대통령 후세인의 은신처가 공개된 적이 있다. 은신처에서 유독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무더운 중동 지역과 어울리지 않는 석유난로였다. 놀라운 것은 그 난로가 바로 한국 중소기업 제품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중소기업 파세코는 1974년 설립되어 30년의 역사를 가진 기업이다. 주력 제품은 석유난로인데 전기장판과 전기난로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석유난로는 유물 취급을 받을 처지가 되었다. 대체품목이 개발되면서 주력 상품이 시장에서 고물 취급을 받자 파세코는 석유난로 생산 중단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포기는 쉬운 방법이었지만 파세코는 그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대신 '발상의 전환'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급변하는 시장에서 쓸모 없어진 석유난로를 들고 뜨거운 중동의 한가운데로 나선 것이다. 파세코로 하여금 뜨거운 중동 지역에 난로를 팔게 한 힘은 과연 무엇일까?

 

성공요인은 고정관념 타파였다. 파세코가 주목한 것은 모든 이의 고정관념에 있는 낮의 중동이 아니라 밤의 중동이었다. 사막 지역인 중동은 날씨가 너무 더운 탓에 밤 기온이 영상 10도만 되어도 사람들이 쉽사리 추위를 느낀다. 또한 중동 남부 고산 지대에는 추운 겨울이 존재한다. 이라크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발전소들이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대다수 국민들이 석유난로에 의존해 겨울을 보낸다. 사전조사를 통해 이러한 중동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파세코는 케로나라는 이름을 내걸고 석유난로를 팔기 시작했고, 예상대로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고정관념을 깬 역발상의 승리였다.

 

파세코의 성공은 고정관념을 타파한 도전 정신의 힘만은 아니었다. 편견을 깨는 결단이 있더라도 자신만의 핵심 기술이 없으면 실패 가능성이 크다. 지난 30년간 철저한 기술 개발에 힘써 온 동사는 매년 매출액의 5~6%를 연구 개발에 재투자하는 국내 실용 신안권 보유 2위의 회사이다. 동사의 석유난로는 미국 공업규격 UL마크를 따 냈으며, 6천 번을 껐다 켜도 고장이 나지 않아야 하는 까다로운 성능 테스트를 통과하여 미국에서도 품질을 인정받았다. 이러한 기술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은 새로운 시장 개척에 대한 자신감이 되었다. 현재 파세코는 전 세계 35개국에 석유난로를 수출하고 있으며, 세계 시장 점유율은 50%가 넘는다.

 

우리는 살면서 곧잘 한계에 부딪힌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본능적으로 익숙한 것과 가장 먼저 악수하려고 한다. 고정관념만큼 익숙하고 편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정관념은 고인 물과 같아서 그 속에 안주할 경우 현재보다 나은 발전과 미래를 기대하기 힘들다. 이는 기업이나 사람이나 다르지 않다. 파세코가 역발상 아이디어를 통해 더 큰 성공을 거머쥐었듯이 삶을 살아가는 데도 때론 역발상의 지혜가 필요하다. 즉 평소 자신에게 결핍되었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콤플렉스로 여길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출발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거상 임상옥의 소각 전략 - 희소전략으로 가치를 부여한다

설득의 심리학의 저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희소성의 원리가 우리 삶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원천적으로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수가 적은 것, 마감이 임박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에 대해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거상 임상옥은 희소성의 전략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1809년 상인 임상옥은 중국 특사단 일행과 함께 인삼을 들고 연경(베이징의 옛 이름)에 도착했다. 당시 조선 인삼은 중국과의 교역 상품 중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조선 인삼이 없다면 중국의 모든 약재상과 중약국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임상옥은 바로 그 인삼에 대한 독점권을 쥐고 있었는데 그가 준비한 인삼은 무려 5천근이나 되었다. 임상옥은 중국에 도착하자 마자 종전의 25냥이던 인삼 가격을 40냥으로 올려 공시했다. 중국 도매상들은 난리가 났다. 인삼 1근에 25냥이라는 가격은 17세기부터 내려오는 전통이었다.

 

중국 약재상들은 임상옥의 가격 인상에 대해 불매 운동에 들어갔다. 일종의 담합행위였다. 그 해가 다 갈 때까지 인삼을 사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임상옥은 고민에 빠졌다. 굴욕을 감수하고 종전 가격으로 내리느냐, 인삼을 못 팔아도 자존심을 지키고 돌아가느냐의 중대 기로에 섰다. 고민 끝에 임상옥은 초강수의 카드를 꺼냈다. 가져온 인삼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불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성공적인 대반격이었다. 불매 운동은 하루도 가지 않아 깨졌고, 단 하루 만에 임상옥은 남은 인삼을 1근에 90냥이라는 천문학적 가격으로 모두 팔아 치울 수 있었다. 대략 반(2500)만 팔았다고 계산해도 225천냥을 벌어들인 셈인데, 이는 당시 조선 전체의 은자 비축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임상옥의 소각 전략은 희소가치를 일깨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희소가치의 중요성을 부각시킬 때는 사실 극적인 효과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피부로 생생하게 느낄수록 그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는 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다. 보통 사람 같으면 고객들이 불매 운동에 들어가면 물러서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는 주변의 가격 인하 권유를 모두 뿌리치고 파산을 할 각오를 하고 역공을 취했다.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이때는 임상옥의 지혜를 떠올려 보자.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상대방을 감동시키는 힘은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내줄 때 얻을 수 있다. 그것이 상대방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더욱 좋다. 둘째 상대가 절박감을 갖기 시작하면 협상의 주도권은 당신이 쥐게 된다. 그러나 명심하자. 본인과 상대에게 꼭 필요한 것을 성급하게 없애기보다 상대가 희소가치를 느끼게 한 다음 없애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4.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하다

월트 디즈니의 세월을 이겨낸 초심 - 99도와 100도의 차이

월트 디즈니는 시카고에서 태어나 14살에 캔사스시티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21살 때 그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열망으로 로스앤젤레스로 가서 영화 제작사마다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그를 채용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월트 디즈니는 얼마 안 되는 저금을 찾아서 카메라 한 대를 빌려 삼촌의 차고에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형 로이와 함께 디즈니 브러더스라는 영화사를 차려 아무도 시도하지 않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앨리스의 모험을 만들었을 때 그는 영화 배급업자들에게 주문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300번이 넘는 거절 끝에 6편을 주문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한 배급업자가 디즈니사의 가장 유망한 작품의 판권을 가로채간 것이다. 계약에 서투른 월트 디즈니는 대낮에 눈뜨고 도둑맞은 꼴이었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가난한 스튜디오에서 다음 작품에 투자할 돈은 고사하고 생계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지만, 월트 디즈니는 꿈을 잊지 않았다.

 

어느 날 그의 앞으로 가로질러 간 생쥐 한 마리가 행운의 여신이 되었다. 생쥐를 보고 새로운 캐릭터 미키 마우스를 떠올린 것이다. 그는 미키 마우스가 비행기를 타고 벌이는 여러 모험을 그린 못 말리는 비행사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후일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성공할 때까지 일을 제외한 어떤 것에도 신경을 꺼라. 먹고, 자고, 꿈꾸고, 걷고, 말하고, 사는 것 외에는 아무것에도 눈을 돌리지 마라. 디즈니사는 이제 스포츠 팀부터 텔레비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이권을 소유하고, 연간 25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기업 제국이 되었다.

 

월트 디즈니는 사업을 하면서 고슴도치처럼 오직 중요한 것 하나에만 매달렸다. 어린이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회사의 일관된 핵심 가치를 지킨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사업을 정직한 어른들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본질적 가치 위에 고객을 확장하는 마케팅 전략을 세운 것이다. 그는 나이와 상관없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모험 정신과 판타지아 세계에 대한 동경을 간직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작품을 만들었다. 이는 핵심 역량에 바탕을 두고 고객을 만족시키고 소비자를 확장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월트 디즈니는 충성 고객을 어린이에서 어른으로까지 확대할 수 있었다.

아무리 여우가 교활한 재주를 부려도 이기는 건 고슴도치다. 재주도 없고 부족하므로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하고 우직하게 세상을 헤쳐 나가는 것이다. 월트 디즈니는 한 가지 불변의 목적과 가치를 여러 가지 형태를 띤 모든 사업에 스며들게 했다. 이것이 디즈니의 성공비결이다. 일이 잘 안 풀려 고민될 때는 디즈니를 떠올려 보자. 스스로를 재주 많은 여우보다 부족한 고슴도치처럼 다듬어라.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마지막 1도를 버텨 낼 의지와 끈기를 가져라. 99도와 100도는 천양지차다.

 

골리앗을 무찌른 델컴퓨터의 마이클 델 - 부족한 것을 모델로 만들어 강자를 잡다

마이클 델은 대학 1학년 때 단돈 1000달러로 델컴퓨터를 세웠다. 그 후 대학을 중퇴하고 회사 운영에 집중하여 자신의 회사를 전 세계 PC 판매 1위 기업으로 키웠다. PC 시장 불황에도 불구하고 델컴퓨터의 성장을 계속되었고, 지금은 세계 시장 점유율 40%를 넘보고 있다. 마이클 델의 성장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지적, 물적 자산이 최고의 힘을 낳을 수 있다고 믿은 자신감이다.

 

마이클 델이 컴퓨터 시장에 뛰어들 당시 인텔, IBM, HP 등은 첨단 기술 및 연구 개발에 적극 투자하는 중이었다. 기술로 승부를 건 것이다. 하지만 자본도 부족하고 기존 유통 시장 진입에 어려움이 많은 델컴퓨터는 프로세스로 승부를 걸었다. 고객에게 저렴한 가격대의 컴퓨터를 직접 조립해 판매하고 방문 A/S를 제공함으로써, 고객 편리를 도모하는 한편, 고객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델컴퓨터는 목표 고객 집단을 컴퓨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 기업, 학교 등으로 정했다. 그리고 중간 상인을 거치는 대신 다이렉트 메일이나 인터넷을 이용한 직접 판매 방식을 택함으로써 동일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었다. 직접 판매의 핵심을 저렴한 가격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끊임없는 내부 프로세스 혁신이 주요 동력이다. 초기 델컴퓨터는 제조 회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외부 제조사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했고, 이는 효율적인 SCM(공급사슬망)을 낳아 전 세계 7개 조립 공장을 통합한 생산력을 67% 이상 향상시킬 수 있었다.

 

마이클 델이 무엇보다 중시한 것은 속도였다. 그는 고객 수요가 어디서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강조했다. 고객 요구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 재고의 빠른 소화, 공급업체와의 발 빠른 거래, 시장에서의 빠른 대응과 선점 등 모든 부분을 철저히 관리했다. 그는 주문이 들어오면 곧바로 생산에 들어가는 경영 방식을 갖추는 동시에 인터넷을 잘 활용했다. 뿐만 아니라 판매 100% 온라인화와 더불어 자동화 시스템을 준비했다. 고객 기업의 기계가 델컴퓨터의 기계에 주문을 하면 생산 프로세스가 시작된다. 그 후 처리는 자동화 프로세스에 의존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마이클 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 자원은 일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컴퓨터에 뛰어든 것이 아니었다. 컴퓨터를 분해하고 조립하고 원리를 터득하는 것이 좋아서 시작했다. 이러한 그의 열정은 후일 성공적인 기업을 만드는 정신적, 지적 자산이자 동인이 되었다. 돈은 열정의 즐거운 부산물이며 성공을 측정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일 뿐이다. 당신의 기업이 충분한 기술과 자본을 갖고 있지 못하더라도 좌절하지 말라. 가지고 있는 역량에 집중하라. 목표를 갖되 집착을 버려야 한다. 그저 있는 것으로 승부하고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부족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면 새로운 방법은 떠오르게 마련이다.

 

5. 느림의 가치를 경쟁력으로 만들다 

하드록 카페가 보여준 장미 효과 - 열패자가 힘을 얻기 시작하다

1971년 런던의 한 공원에 흥미로운 풍경이 벌어졌다. 거리의 부랑자, 폭주족, 히피 등 이른바 사회적 왕따들이 하드록 카페를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하드록카페는 미국에서 영국에 유학 온 아이작 티그릿과 피터 모턴이 런던의 한 공원에 설립한 카페였다. 두 사람은 Love All Serve All, All is One, Take Time to Be Kind, Save The Planet을 모토로 내걸고 어느 곳에서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소외된 계층을 직원으로 고용했다.

 

이들은 간부회의라는 말 대신 가족회의라는 용어를 썼으며 급여도 동등하게 책정하고 이익도 공유했다. 왈츠가 아닌 팝을 듣게 했으며, 스테이크 대신 햄버거, 샌드위치 등 신분에 관계없이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보였다. 특히 아이작 티그릿은 직원들을 신뢰하고 보살폈으며, 오직 그들의 생활을 세심하게 챙기는 데 시간과 열정을 쏟았다. 이 대책 없는 이상주의자들의 사업은 승승장구해 런던 음악인들의 집결지로 발전했다. 에릭 클랩턴이 자신의 기타를 기증했고 존 레넌이 손으로 쓴 가사와 비틀스의 골든 앨범도 기증품으로 들어왔다. 지금 하드록 카페는 런던의 1호점을 시작으로 140개국에 140여 개의 체인점을 갖고 있으며, 각 나라의 정서와 문화에 맞게 운영되고 있다.

 

장미는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꽃이다. 이때의 장미는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상징한다. 만일 거지에게 동전 대신 장미를 안겨 준다면 어떨까? 그는 장미를 통해 전해진 삶의 따스한 기운에 힘입어 사회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러한 장미의 효과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동정을 베풀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생존하고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도리임을 강조한다. 하드록 카페는 바로 장미의 효과를 극대화한 모델이다.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일시적 자선이 아니라 함께 자선 경영을 실천함으로써 이들이 생산과 이윤 창출을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 설 수 있도록 길을 터 준 것이다.

 

카를로스의 슬로푸드 운동 - 속도의 시대 그 숨은 경쟁력

슬로푸드 운동이 시작된 곳은 이탈리아 로마였다. 미국 패스트푸드 대명사인 맥도날드가 로마에 진출하자, 슬로푸드 운동의 창시자이자 회장인 카를로스와 그의 친구들은 맛을 표준화하고 전통 음식을 소멸시키는 패스트푸드 진출에 대항했다. 식사와 미각의 즐거움, 전통 음식 보존 등의 기치를 내걸고 슬로푸드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싼값으로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햄버거를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1365, 17, 하루 24시간 일하는 미국식 노동 문화의 세계적 확산을 막는 운동이었다. 또 유전자 조작이나 환경을 파괴하는 작물 재배를 반대하는 운동이다. 음식을 한 사회의 전통적, 문화적 가치를 내포하는 문화로 이해하는 슬로푸드 운동은, 건강한 음식이 건강한 사람과 건강한 가치를 만든다는 신념으로 전통적인 영농 방식과 생활 방식의 보존에 힘쓰고 있다. 1986년에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은 현재 40여 개국 7만 명의 유료 회원을 가진 세계적 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슬로푸드 운동은 먹을거리를 통해 식생활 문화를 개선함으로써 서서히 생활 전반에 걸쳐 변화를 시도하자는 움직임이다. 따라서 속도만을 강조하는 현 시대의 흐름에서 잠시 비껴나 자신만의 삶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재 자신이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목표점을 향해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사업가가 남미로 휴가를 갔다. 그는 그곳 어부들을 대상으로 부자가 되라고 설교를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낮잠도 자지말고 더 열심히 일을 하라고 했다. 그러면 큰 배를 살 수 있고, 훗날 도시에 나가 큰 사업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한 어부가 물었다. “그런 다음에는 무엇을 하죠?” 사업가는 대답했다. “한적한 시골에 살면서 늦잠을 실컷 자고, 저녁마다 친구들과 기타를 치며 노는 거지요.” 어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 내 생활이 그렇습니다.” 속도를 숭배하는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한 번쯤 자신의 삶을 돌아볼 것을 충고하는 이야기이다. 슬로푸드 운동이 우리네 밥상에 선사한 느림의 미학을 곱씹어 보면서 삶 전반에 걸쳐 안단테를 실현할 때다.

 

 

여현덕 지음

중앙books, 20087,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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