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마케팅경영자 예수"는 예수가 펼친 리더십을 비즈니스

JESUS CMO 최고마케팅경영자 예수

 

 

1. 예수 마케팅의 시작은 사람이 되는 것.

 

예수는 원칙을 세우기 위해 고독한 광야로 들어갔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의견들을 내놓기 때문에 되레 잘못된 판단이나 결정적인 실수를 하기도 한다. 중대한 사인일수록 몇 사람의 의견만 취합해 대안을 몇 개로 압축한 다음 스스로 숙고해서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선승(禪僧)들이 화두(話頭)를 깨치기 위해 홀로 면벽수도(面壁修道)를 하는 것처럼, 진정한 마케팅을 위해서는 버걱거리는 사람들 틈을 빠져나와 온전히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예수는 광야에서 3가지 원칙을 세웠다. 그 원칙을 현대에 맞게 설명하면 이렇다.

첫째, 마케팅은 사람을 섬기는 일이다.

둘째, 마케팅 과정에서 독점욕(獨占慾)의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셋째, 내면의 명예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예수는 이 3가지 원칙을 정립하고 평생 그대로 살았다. 마찬가지로 마케터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원칙을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성공한 뒤에도 마찬가지로 자기원칙을 다시 점검하고 수정·보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광야에 홀로 있는 시간을 경험해야 한다. 그 광야가 실제 광야일 수도 있고 자기 방이나 사무실일 수도 있다. 어떤 장소가 되었든지 간에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게 곧 광야를 체험하는 일이 된다.

 

예수는 욕구를 버리고 평판을 쌓았다.

각각의 유대교 교파마다 자신들 중심의 하나님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가 보기에 그것은 옳지 않았다. 진정한 하나님의 가르침은 그런 식의 구별짓기가 아니다. 구별하는 사람들은 우월감에 빠져 세상을 정확히 보지 못한 채 독선으로 흐르고, 구별당하는 사람은 실체 없는 열등감에 빠져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거나 반대로 적의(敵意)를 불태우는 반항세력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이 민족과 계급을 초월해 인류 전체를 사랑하고 계심을 전파해야 한다. 예수는 그것이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목적임을 알았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들을 위해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순간의 희생으로 나도 행복해지고 우리도 행복해지는 윈-윈의 길이다. 그러면 마케터와 고객은 신뢰의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마케터의 올바른 마음이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를 높인다. 유능한 마케터는 동료와 고객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다. 주위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겸손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마케팅에서의 평판은 가수가 노래를 잘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고객은 좋은 평판을 가진 마케터와는 계약하기 전부터 계약을 기다린다. 평판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슴속에 똑똑히 새겨두어야 한다. 물론 평판은 하루 이틀 사이에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독점욕을 내려놓고 열과 성을 다하는 마케터는 갈수록 평판이 좋아진다. 일관성 있는 태도와 진심 어린 행동이 쌓여 결국 좋은 평판이 된다. 이렇게 해서 평판을 얻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어떤 인맥이나 배경보다도 더 탁월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2. 예수 마케팅의 목표는 사람을 얻는 것.

 

예수는 배경과 능력보다 열정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예수는 자신의 사명을 마케팅할 팀을 구성할 때 가장 중시했던 요소로 열정을 꼽았다. 그가 함께 가고자 했던 인물들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예수는 제자를 신중히 골랐다. 당시 갈릴리 호수는 그 지역에서 가장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모이던 곳이다. 예수는 생업의 현장에서 땀 흘려 그물을 던지고 있던 사람들 중 네 명을 선택했다. 예수는 그들에게 물고기를 얼마나 잡았냐고 묻지 않았다. 물고기의 종류도 묻지 않았다. 고기가 잘 몰려다니는 곳이 어디냐고 묻지도 않았다. 물고기 잡는 방법이나 종류 등은 다 기능(function)이다. 기능은 익히면 된다. 정작 중요한 것은 고기를 잡고자 하는 열정이다. 아무리 기능이 좋아도 열정 없이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 기능은 좀 떨어져도 잡고자 하는 열정이 있을 때는 얼마든지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어떤 일을 이뤄야겠다는 열정에 이끌리는 사람은 그 일의 성취를 위해 다른 필요한 자질들을 스스로 계발한다. 이런 열정이 있어야 힘든 일을 극복하고 잘될 때 교만하지 않으며, 바쁠 때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할지 우선순위를 분별할 수 있다. 더욱이 열정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놓아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며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찾는다. 모든 지식과 정보가 열려있는 이 시대에는 스스로 강한 동기부여를 할 수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예수는 다양성을 인정해 공통된 목표로 이끌었다.

12명의 포트폴리오는 다양하다. 우선 출신 지역이 조금씩 달랐다. 가버나움 출신의 마태, 갈릴리 출신의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다대오와 시몬, 그리고 가룟 출신으로 유다가 있었다. 학력도 달랐다. 세리를 하고 있던 마태는 학식이 높은 사람이었다. 당시 세리는 계산을 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아랍어,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의 4가지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했다. 늘 책을 가까이 하며 살던 마태와는 달리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오로지 어부 일을 하면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자란 사람들이다. 팀의 총무를 맡았던 가룟 유다의 경우 비교적 교육을 많이 받았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성격은 더 천차만별이었다. 너무 자신감이 넘쳐 무슨 일이든 일단 저지르고 보는 베드로와 매사에 의심하고 머뭇거리는 도마가 있었고, 우레의 아들이라 불릴 만큼 거칠고 급한 성격의 요한과 매사에 겸손하고 나서기를 싫어하며 불평할 줄 모르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도 있었다. 다대오는 욕심과 야망도 컸으나 의심과 불만도 컸다. 반면 채식주의자이던 마태는 정확하게 사리를 분별해 흔들림 없는 결단을 내렸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특별한 재주는 없었으나 열정적 기질을 지녔고, 가룟 유다는 여러 재능을 가졌으나 이기심이 지나쳤다. 이처럼 예수는 서로 다른 학력과 직업, 성격을 지닌 사람들을 모아 3년 동안 침식을 같이하며 팀워크를 다졌다.

 

사회의 혁신이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 사이의 협력에서 나오는 것처럼 마케팅의 성공도 다양성에서 나온다.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그런 모임에서 나올 수 있는 해결안이라야 대개는 상식 수준일 뿐이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에서는 명확한 목적을 제시해주면 특이한 해법이 나온다. 사람은 자기가 알고 있는 만큼만 본다. 책이나 미디어를 통한 간접경험에는 한계가 있다. 밑바닥 생활을 해본 사람이 그 세계 사람들의 정서를 알고, 상류생활을 해본 사람이 그들의 취향에 맞는 해결책을 내놓는다.

 

3. 예수 마케팅의 과정은 사람을 만나는 것.

 

예수는 고객에게 주도권을 줌으로써 마음을 얻었다.

기원전 8세기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속국이 된 적이 있었다. 이스라엘의 지도층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노예로 끌려갔다. 앗수르는 당시 사마리아 지역에 남아 있던 사람들과 자국민을 결혼시켰다. 거기에서 태어난 혼혈인이 바로 사마리아인이다. 유대인들은 이들이 이교도와 섞여 순수하지 않다며 배척했다. 그런 유대인이 목이 마르다면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청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사마리아 여인은 유대인인 예수에게 처음부터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이런 관계일수록 상대에게 일시적으로는 초반 주도권을 넘겨줘야 한다. 나와 적대적이고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이 나의 우월성을 인정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안심하게 된다. 내게 마실 물을 좀 달라. 예수는 이 한마디 말로 여인에게 갑()의 권위를 준 것이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관계는 목마르면 물 좀 달라고 할 수 있는 사이가 절대 아니었다. 예수는 당시 문화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접근을 한 것이다.

 

마케팅에서는 말 걸기가 중요하다상대가 누구든 간에 내 제품을 사서 더 행복한 삶을 살고 더 편안한 생활을 하면 만족한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진정한 마케터였다. 동족의 혐오 대상인 사람을 갑의 위치에 놓고 자신은 을()의 위치로 내려와 거래를 성사시켰다. 그는 자신의 이데올로기와 신념을 알리기 위해 민족감정과 개인의 기분을 뛰어넘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사마리아 여인은 일시적으로나마 갑이 갖는 우월감을 갖고 예수를 대하게 되었다. 마케터가 이런 태도를 가질 때 고객은 그 마케터가 파는 물건이나 서비스가 최고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좋은 것이라고 예상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마케터는 소비자가 일단 갑의 위치에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제품을 팔기 위해 일부러 비굴한 인상을 줄 필요는 없다. 예수는 본래의 목적과 아무 연관성이 없는 부분에서 을의 위치를 자처했다. 물을 달라고 했을 뿐이니 말이다.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의 아픔을 어루만져 허브 고객으로 만들었다.

예수가 여인 대신 그 마을의 과묵한 어른이나 체면을 중시하는 촌장을 만나 설득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마을 사람 전체를 고객으로 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입소문을 빠르게 퍼뜨릴 수 있는 허브(hub) 고객을 찾아야 한다. 허브 고객은 정치인 등의 유명인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지나치게 나설 경우 쇼(show)로 비쳐질 수 있다. 허브 고객은 어떤 문화를 가진 특정 집단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을 의미한다. 사실 마케터에게는 어떤 회사의 제품을 다루느냐보다는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남성편력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벌써 4명의 남자와 살다 헤어졌고 지금은 다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었다(요한복음 4:18). 이 남자도 정식 남편이 아니다. 남의 남편을 유혹해 살고 있는 중이다. 마을에서는 여인의 방탕한 행실을 잘 알고 멀리하려 했다. 오죽하면 이 여인이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물을 길러 다녔겠는가. 예수는 사람의 눈을 피해 우물가를 찾은 여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았다. 예수는 여인의 파격성을 활용했다. 여인은 본능에 강했고 충실했던 사람이다. 당시 본능을 율법과 전통으로 억누르며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면적으로는 여인을 비난했으나 내면은 그 여인과 별 다를 바 없었다. 표면적 합리성으로 사는 사람들이나 그것에 지친 사람들은 이면적 본능을 드러내놓고 사는 여인이 더 진실되어 보이고 그녀의 말에 내심 귀를 기울이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예수는 여인의 다양한 삶의 경험을 높이 샀다. 여인의 과거가 당대의 가치로 칭찬받지 못한다 해도 흘러간 과거일 뿐이다. 오히려 남들이 갖지 못한 다양한 삶의 체험이 여인을 유능한 허브가 될 수 있게 했다. 여인처럼 드러내놓지 못해서 그렇지 어쩌면 여인 이상으로 수면 아래에서 본능에 몸부림치며 사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여인의 진솔한 삶의 경험이 더 큰 관심거리였다.

 

4. 예수 마케팅의 실천은 사람을 아는 것.

 

예수는 빛과 소금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예수는 팔복(八福) 겸손함, 애통함, 온유함, 의로움, 자비로움, 청결함, 화평함, ()로 인한 박해 을 제시하면서 유대교와의 차별성을 부각시켰다. 마케팅적 시각으로 보면 유대교는 물질적 복을 제품으로 내놓았던 것이고 예수는 팔복을 신제품으로 론칭한 셈이다. 그리고 이 내면의 행복을 예수는 2가지 캐치프레이즈로 압축했다. 바로 빛과 소금이다. 팔복의 성능을 이보다 더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단어가 어디 있겠는가? 사람들은 제품을 선택할 때 이 제품이 내게 어떤 면에서 타당한가를 찾는다. 팔복이 좋은 줄은 알겠는데 그것이 나한테 어떤 효과를 줄 것인지 궁금해하는 대중들에게 예수는 빛과 소금을 비유로 들어 명쾌하게 설명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겠는가? 그런 소금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 밖에 내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마태복음 5:13~14)

 

예수는 자칫 자신이 말한 복의 개념이 헛된 논쟁으로 빠지지 않도록 신중하게 빛과 소금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 두 단어를 통해 대중을 하나로 만들었다. 예수의 말에 대중들은 각자가 귀한 소금이 된 느낌을 가졌다. 소금은 음식에 들어가 맛을 낸다. 또한 음식을 썩지 않게 한다. 이는 소금이 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다. 팔복은 소극적으로 보면 우리 인생에 맛을 내고 사회가 썩지 않도록 해준다. 적극적으로 보면 세상을 밝히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준다. 따라서 유대교의 물질적 복을 구할 것이 아니라 팔복을 수행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자는 게 예수의 명료한 가르침이다. 그것이 예수가 팔복산에서 제시한 헤드카피였다.

 

예수는 고객이 바라는 대로 말하고 행동했다.

주제는 팔복이었고 헤드카피는 빛과 소금이었다.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이 끝날 무렵 예수는 대중들에게 신뢰와 장인정신을 엔드라인으로 내놓았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게 마련이다.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모두 찍혀 불에 던져진다. 따라서 너희는 그 행위를 보면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한 말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그러나 내가 한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큰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들이치면 그 집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마태복음 7:17~27)

  

다시 말해 마케터의 장인정신이란 무엇인가? 예수는 산상 설교에서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하라(마태복음 7:12)고 했다. 그렇게 해야 고객으로부터 신뢰를 얻고 좋은 열매를 맺는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입으로는 남을 대접하라고 말하면서도 자신들이 대접만 받을 줄 알았지 남을 대접할 줄은 몰랐다.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변화를 강조하다가 나라까지 로마에게 빼앗겼다. 실천하지 않는 가르침은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속고 싶지 않으면서 남을 속일 때 신뢰가 깨진다. 나는 존중받고 싶으면서 남을 무시할 때 신뢰가 깨진다. 나는 싸고 좋은 것을 찾으면서 남에게는 비싸고 질 낮은 제품을 권할 때 신뢰가 깨진다. 마케터 자신이 고객으로부터 대우받기 원하는 딱 그 만큼만 대우해도 신뢰가 쌓이는 법이다. 절대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가장 중요한 일이다. 예수의 팔복산에서의 산상 설교는 비록 그 시간은 얼마 되지 않으나 마태복음 28장 가운데 무려 3개의 장을 할애해 기록하고 있다. 팔복산의 설교는 예수 가르침의 꽃이다. 당시 그의 가르침을 구하려고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예수의 가르침이 유대교 지도자들과 같지 않고 큰 권위가 있다고 말했다. 쉽게 지나칠 부분이 아니다.

 

5. 예수 마케팅의 성공은 사람을 움직이는 것.

 

예수는 롱런할 수 있는 포지셔닝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유대사회에서 대중을 움직이는 그룹은 세 종류였다. 선지자, 제사장, 왕이었다. 왕은 통치하는 사람이었고, 제사장은 죄의 용서와 위로의 일을 했으며, 선지자는 왕과 제사장을 비롯한 지도층 인사들의 잘못과 백성 전체가 무지몽매한 욕망에 휘둘릴 때 비판하고 깨우쳐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예수는 선지자처럼 지도층의 잘못을 캐고 공격하는 것에 자신의 사명을 한정짓지 않았다. 선지자는 문제점을 노출시키지만 대안은 제시하지 못했다. 왕이나 제사장은 문제의 본질을 덮어두려 했다. 왕은 자신의 잘못은 간과하고 호령하는 일에, 제사장은 시시비비를 덮어두고 유야무야시켜 약자의 권리를 회복시켜주지 못했다. 예수는 선지자처럼 잘못을 지적하고 진실한 제사장처럼 고쳐주며 훌륭한 왕처럼 복된 길을 제시해주려고 했다. 예수는 선지자, 제사장, 왕의 삼중직(三重職)을 맡았다예수는 정죄의 신학을 사랑의 신학으로 바꾸고, 제사장 위주의 수직 질서를 모든 생명 있는 존재를 중히 여기는 수평 질서로 바꾸려 했다. 예수의 포지셔닝은 자신만의 차별화된 위치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내 제품과 경쟁사의 그것을 분리시키는 것이 포지셔닝 전략이다. 고객의 마음속에 내 제품의 차별화된 특징과 핵심이 되는 혜택을 심어놓는다면 롱런(long run)할 수 있다.

 

예수는 간음한 여인을 용서함으로써 푸시 마케팅을 성공시켰다.

그 여인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검거되어 헝클어진 옷매무새와 머릿결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끌려왔다. 예수의 가르침을 받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여인과 그들을 쳐다보았다. 분기탱천한 서기관 한 사람이 예수에게 따졌다. 선생, 이 여자는 간음하는 현장에서 잡혔소. 모세의 율법에 이런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는데 선생 생각은 어떻소?(요한복음 8:1~5) 예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요한복음 8:6~8) 그리고는 다시 몸을 굽혀 땅바닥에 무언가를 계속 썼다. 그들은 이 말을 듣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둘 자리를 뜨더니 결국 예수 앞에 그 여자만 남게 되었다.

 

자신을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서 간음한 여인을 데려왔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예수는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여자를 돌로 치라며 푸시(push)했다. 그리고 다시 땅바닥에 글씨를 썼다. 예수가 바닥에 쓴 것은 바로 그들의 죄상이었다. (pull) 마케팅이 고객 중심의 퍼미션(permission) 마케팅과 관련이 깊다면, 푸시 마케팅은 기업이 중심이 되는 원투원 마케팅과 연결된다. 예수는 한 손에 돌을 들고 서 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죄목을 땅바닥에 썼다. 푸시 마케팅이 일방적으로 고객에게 접근해가는 것처럼, 예수도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전달했다.

 

예수는 삭개오 스스로 회개케 하는 풀 마케팅을 펼쳤다.

삭개오는 동족으로부터 비난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모질게 돈을 긁어모으며 자신의 불명예를 돈으로 채우려 했다. 그러나 동족들로부터 받는 냉대에서 생겨난 허무감과 소외감은 아무리 재산을 불려도 사라지지 않고 더 커져만 갔다삭개오는 어떻게든 예수를 봐야겠기에 뽕나무를 발견하고는 그 위로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살찐 돼지가 나무를 타는 것 같다고 수군거렸다. 예수도 그 모습을 보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곤 말했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누가복음 19:5) 삭개오는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예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뽕나무에서 내려왔다. 뽕나무를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삭개오의 귓가에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수가 저런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겠다니!(누가복음 19:7) 삭개오는 자신을 따라 집에 들어선 예수 일행에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먹은 것이 있다면 네 갑절로 갚아주겠습니다.(누가복음 19:8)

 

풀 마케팅은 최종 수요자의 소비를 창출할 때 매스미디어 광고 등을 이용해 소비자를 끌어당기는 전략을 이용한다. 예수는 창녀와 죄인은 물론 가난한 자와 세리의 입을 통해 그가 모든 이들의 구세주임을 알렸다.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이미 예수에게 끌리고 있었다. 삭개오 또한 일찍이 소문을 듣고 예수를 만나 새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가 여리고를 지나간다고 하자 마치 자석에 끌리는 쇠붙이처럼 예수를 찾아갔다. 이때 예수는 간통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이용했던 일방적 강요방식을 삭개오에게는 이용하지 않았다. 그에게 동족을 착복해 네 배만 불렸구나. 당장 회개하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삭개오는 자신의 곤혹스러운 처지를 감싸고 이해해준 예수 앞에서 비로소 순결했던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모두가 벌레 보듯 하는 자신을 안아준 예수 앞에서 삭개오는 자발적으로 변화했다.

   

6. 예수 마케팅의 완성은 사람을 사랑하는

 

예수는 의지로 나아갔고 아가페로 완성했다.

예수는 천국사랑을 내놓았다. 유대교 율법과는 정반대의 개념이다. 유대교는 심판정의를 말한다. 물론 그 정의는 기존 계층질서에 무조건 순종하는 정의였다. 그러나 예수는 심판 없는 천국을 말했고 수평적 정의에 기반을 둔 무조건적인 사랑을 설파했다. 예수가 보여준 사랑은 아가페(agape)였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뒤 갈 곳을 잃은 베드로는 다른 다섯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로 돌아가서 다시 어부생활을 했다. 이튿날 새벽 예수가 호숫가에 나타났다. 그들은 그가 예수인 줄 미처 몰랐다. 예수가 베드로에게 말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보아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베드로가 엉겁결에 그 말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고기가 잡혔다. 이때 다른 제자가 예수를 알아보고 외쳤다. 저분은 주님이시다! 그 말에 깜짝 놀란 베드로는 벗고 있던 몸에 겉옷을 걸치고 그대로 물속에 뛰어들었다. 잠시 후 제자들이 고기가 잔뜩 걸려든 그물을 끌며 뭍으로 나왔다. 예수는 호숫가에 모닥불을 펴놓고 생선과 빵을 굽고 있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제자들 중 그 누구도 예수에게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묻는 이는 없었다. 그가 예수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 뒤 예수가 베드로에게 물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agape)하느냐?며 두 번 동일하게 물었다. 베드로가 주님을 사랑(philia)합니다라고 대답하자 예수는 이번에는 네가 나를 사랑(philia)하느냐?고 물었다. 베드로는 세 번 다 동일하게 사랑(philia)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스인들은 사랑을 4가지로 구분해서 표현한다. 조건 없는 사랑인 아가페,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인 스톨게(stolge), 친구와의 우정이나 형제간의 사랑인 필리아(philia), 남녀 사이의 사랑인 에로스(eros)가 그것이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조건 없이 자신을 사랑하기 원했으나,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 부인한 일 때문에 차마 아가페 한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마음을 알기에 예수는 세 번째 물음에서 필리아 하느냐고 묻는다.

 

 

이동연 지음

스마트비즈니스, 20085월,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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