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워런 버핏 : 자본 운용 모델과 리더십 모델을

 

CEO 워런 버핏

 

 

버핏, 신화를 벗다

버핏의 이런 엄청난 성과는 단지 주식투자자로 행동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CEO로 행동했기에 즉, 사람을 이끌고 자본을 운용했기에 이런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그의 이런 능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다. 그도 끊임없이 배워야 했다. 그의 젊은 시절은 실수의 연속이었고 지금도 실수를 한다. 그러나 1970년대와 80년대에 인지능력의 폭발을 경험하면서 그의 리더십과 자본운용 모델도 안정적인 틀을 갖추게 되었다. 그의 리더십과 자본운용 모델 덕분에 버크셔 해서웨이는 투자 중심의 회사에서 벗어나 운영회사로서 뛰어난 실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버핏이 다른 CEO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모델 덕분이며, 이 책에서 설명할 내용도 그의 리더십과 자본운용 모델이다.

 

워런 버핏이 37년 동안 회장 겸 최고경영자를 지내면서 버크셔 해서웨이의 시장가치는 연복리 기준으로 매년 25% 이상 성장했다. 37년간 25%의 복리 성장이 얼마나 대단한지 얼핏 이해가 힘들 수도 있다. 버핏의 실적을 사람의 키에 빗대어 그려본다면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내 아들이 태어났을 때 60센티미터였으니까. 버크셔 해서웨이의 성장률과 같은 속도로 이 아이가 자란다면? 37세가 되었을 때 아이의 키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보다 크다! 만일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의 회장을 맡은 1965년에 누군가 선견지명을 가지고 이 회사에 1만 달러를 투자했다면 4,0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들였을 것이다.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에 합류하기 9년 전인 1956, 버핏 파트너십으로 투자조합을 시작했을 때 이 돈을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식에 재투자했다면, 이 주식의 가치는 거의 27천만 달러에 육박한다. 그러나 이에 반해, 1965년에 미국 대기업의 시장가치를 폭넓게 반영하는 S&P 500지수에 1만 달러를 투자했다면 그 가치는 현재 144천 달러에 그칠 것이다. 거대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비하면 9미터짜리 난쟁이에 불과하다.

 

현재 빌 게이츠에 이어 미국 2위의 부자이며 370억 달러의 개인 재산을 가지고 있는 워런 버핏도 고도의 능력을 발휘해 땀 흘려 싸워야 하는 전쟁터가 바로 자본시장이다. 자본시장에는 실수의 기회가 무수히 존재하며, 이런 실수의 기회를 발판 삼아 매년 높은 복리가치 성장을 이룰 수도 있고 성장이 저지될 수도 있다. 버핏은 과거나 지금이나 기회를 포착할 줄 아는 사람이다. 또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오류를 피할 줄 알고, 실수에서 배울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이런 능력을 결합해서 독특한 리더십을 형성했고 이를 기반으로 재능을 한껏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버크셔 해서웨이에서 자본 배치를 담당하는 경영자들에게도 이러한 능력을 가르치고 있다.

 

1부. 사람들의 리더

버크셔 해서웨이와 조직의 관성

주식투자자로 성공가도를 달리던 워런 버핏은 1960년대 초반, 기업의 경영자로서 미래의 비전을 세웠다. 그의 비전은 당시나 지금이나 매우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기업을 경영할 때 오너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오너처럼 행동하려면 단순한 경영자가 아니라 능력의 영역에 놓인 수많은 기회들 중에서 수익성이 가장 높은 투자를 골라내는 자본관리자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면서도 위험은 최소한도로 줄여야 한다. 주주가 자기 돈을 직접 관리한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주들이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보다 낮은 수익률을 올린다면 맡긴 돈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버핏은 자신의 역할을 단순한 최고경영자에 국한시키지 않았다. 또한 섬유나 캔디, 보험, 그 외 다른 여러 상품을 제조하는 회사에 대한 경영만으로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자본 배치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다른 길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 이후 그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자회사에 근무하는 경영자들에게도 자신과 똑같은 철학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버크셔 해세웨이에는 워런 버핏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오너 겸 경영자로 있고, 버핏이 오너로서 가지는 관심사와 경영자로서 가지는 관심사가 완전히 부합한다는 점에서 볼 때는 단순하게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버핏이 버크셔의 소액 주주들을 기업의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회사 경영에 그들의 입장도 최대한 반영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또한 버핏이 버크셔의 자회사를 소유하고는 있지만 경영자들에게 최대한 전권을 일임한다는 점에서도 결코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그와 경영자들의 관계는 버크셔의 주주들과 버핏의 관계와 같다. , 경영자들은 버핏을 대신해서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들이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주주는 기업을 소유하고 경영자는 기업을 경영한다는 체제가 확산된 이후에도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가 한 가지 있다. 바로 경영자들이 오너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다. 애덤 스미스는 1776년에 이 주제에 대한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인간의 특성을 고려할 때 경영자와 오너의 이해관계는 결코 양립될 수 없으며, 경영자는 고용주인 오너들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그가 옳았다! 현대의 어떤 기업지배구조도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몇 가지 교훈을 얻기 전까지는 버핏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너처럼 행동한다는 버핏의 결심은 경영자로 거듭나자마자 난관에 부딪쳤다. 그는 소위 매우 놀라운 발견이라고 부르는 힘에 봉착한 것이다.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힘이었다. 그는 이 힘을 조직의 관성이라 칭했다.

 

조직의 관성

버핏은 조직의 관성이 작용하는 방식을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했다.

(1) 기업은 뉴튼의 제1법칙인 관성의 법칙에 지배되기라도 하듯 현재의 방향을 고수하려고 합니다.

(2) 일을 하다보면 자꾸만 기한이 연장되듯 기업의 프로젝트나 인수 활동도 계속해서 추가적인 자금을 필요로 합니다.

(3) 그러나 기업의 리더가 탐욕과 어리석음으로 똘똘 뭉쳐있어도 부하직원들은 재빨리 수익률을 분석하고 전략을 연구해서 그를 도와줍니다. (

4) 또한 이러한 리더는 경쟁사가 사업을 확장하고 인수 활동을 벌이고 임원들에 대한 보상체계를 마련하면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의 행동을 그대로 모방합니다.

 

버핏은 이렇게 말했다. 기업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는 이유는 무절제함과 어리석음 때문이 아닙니다. 조직의 관성 때문입니다. 버핏은 조직의 관성에 허를 찔린 셈이었다. 그때는 성공적인 주식투자로 이름을 날리면서도 기업의 펀더멘털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조직의 관성은 이 펀더멘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것을 알아채기에는 그의 주식 보유기간이 너무 짧은 편이었다. 버핏은 경쟁우위를 유지하고 종합주가지수나 경쟁사보다 뛰어난 실적을 발휘하려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 역시 버크셔가 업계에서 우뚝 설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조직의 관성은 기업규모나 시장점유율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버핏은 경영자로 탈바꿈하기 오래 전부터 한발 앞서나가는 투자자였다. 그러나 조직의 관성에 대해 알게 된 순간, 미래에도 계속 한발 앞선다고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다 지속적이고 영구적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는 해냈다. 관성이 존재함을 깨달았다. 관성의 메커니즘이 인간 본성의 문제임을 인식했다. 그는 마침내 경영자와 오너 사이의 틈을 메워줄 가교를 건설하고, 오너들의 이상에 맞는 경영자가 되는 동시에 자본 배치가로서도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앞서나간 워런 버핏

버핏이 젊은 시절 투자의 세계에 뛰어들었을 때, 주식시장은 내부거래자들의 주 무대였다. 주가 조작이 흔했고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가치평가의 개념조차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러나 벤저민 그레이엄이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초반에 수학적 바탕 위에서 가치평가와 종목 선택에 대한 이론을 세우면서 이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 시절에는 가치평가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기 때문에, 이 이론에 입각한 투자자들은 엄청난 황금기를 누렸다. 그레이엄의 투자 원칙을 교과서 삼아 버핏은 투자 대상 기업들의 모든 데이터를 탐욕스러울 정도로 철저히 검토하였다. 물론 버핏의 숫자 감각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버핏의 어린 시절 친구들인 밥 러셀과 돈 댄리는 자주 버핏에게 두 자리 수를 곱하거나 도시별 인구수에 대한 문제를 냈으며, 버핏은 순식간에 답했다고 회상한다. 그레이엄 뉴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레이엄이 몸소 진두지휘하며 전설적인 능력을 발휘하던 이 회사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버핏의 숫자 감각에 동료들은 혀를 내둘렀다.

 

2부 자본 배치가

전천후 인간

버핏의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그가 마이더스의 손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금세 공격적으로 돌변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신의 후광을 입었다고 떠받들면서도 평범한 사람처럼 일격을 당해 피 흘리고 상처입기를 바란다. 1990년대 후반 신경제 진영에서 총탄이 날아들었다. 기술주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버핏의 투자방식이 틀리다는 비난이 커졌다. 사람들은 그가 올바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잠시 버크셔 해서웨이의 실적이 S&P 지수를 밑돌며 회복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술주의 거품이 빠지자 재빨리 상처가 회복되었고, 주식시장의 침체 속에서도 버핏의 주식은 반등했다. 20019 11테러로 버핏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은 더욱 가공할 무기를 얻었다. 이번에 그 무기를 전달한 사람은 버핏 자신이었다. 테러 공격이후 제너럴 리로 인해 그의 커다란 허점이 드러났다. 그는 주주들에게 9 11 발생으로 제너럴 리의 보험 인수 기준이 심각한 결함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무역센터 테러로 인한 보험금 청구와 관련해서 버크셔의 분기별 추정 부채가 거의 230억 달러에 달한다고 보고했다. 이중 제너럴 리가 보상해야 할 금액은 170억 달러였다.

 

버핏은 잘못을 인정하고 모든 비난을 감수하면서 보험회사 경영에서 지키는 자신의 황금률이 제너럴 리에서 산산조각 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워런 버핏의 삼위일체적인 힘이 제너럴 리에서는 집대성되지 못했던 것이다. 경이적인 인수라고 생각했던 제너럴 리가 버크셔 안에 들어온 후 다음과 같은 그의 능력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은 것이다. 이런 능력들이 어떻게 일격을 당했는지 면밀히 살펴보면 버핏이 저지른 실수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또한 버핏은 신이 아니라 인간일 뿐이며 그도 실수를 저지른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인간에 불과하기에 자본 배치 영역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다룰 때 앞서가는 대신 변화에 후속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신속히 대응하기 때문에 실수로 인한 버크셔의 피해를 최소한도로 줄일 수 있다. 또한 버핏이 인간적 측면에서 과감한 변화가 필요할 때 두려움 없이 조치를 취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앞서가는 리더임을 알 수 있다. 워런 버핏은 고정관념을 거부한다. 그는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전천후 인간이다.

 

때가 되었을 때

제너럴 리를 인수하여 인수 효과가 발생하도록 여러 노력을 행한 지 일 년 후에 워런 버핏은 주주들에게 이번 인수의 진짜 이유를 간접적으로 밝혔다. 주가가 전년도 최고가의 50%를 밑돌던 상황에서 1999년 버크셔 연차보고서를 작성하며 버핏은 자사주 매입 문제를 설명했다. 버크셔의 주가가 내재가치를 훨씬 밑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입니다. 물론 보수적인 방법으로 계산하였습니다. 이때에도 그는 과거에도 여러 번 사용했던 자본 배치의 요점을 다시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버크셔의 A주식이 45,000달러 이하로 떨어졌을 때 우리는 자사주 매입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주들이 이 보고서를 읽어볼 때까지 매입을 미뤄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주주들과 주식시장은 그의 메시지를 이해했다.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에 몸담은 후 처음으로 내재가치를 훨씬 밑도는 가격으로 주식이 거래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일부 주식에 대한 자사주 매입을 고려했다. 워런 버핏이 버크셔의 가치를 분석한 내용을 사람들이 이해하기 시작하자 주가는 당연히 급등했고 거래가 활기를 되찾았다. 이제 계산을 해보자. 45,000달러가 내재가치 이하라면, 제너럴 리의 주식 전체를 매입했던 때의 81,000달러라는 가격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식이 내재가치에 상당한 프리미엄을 더해서 거래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이유로 버핏은 이 거래를 추진했다. 제너럴 리는 1921년에 창업되었으며, 버크셔 해서웨이가 인수했을 때 이 회사는 세계 3대 재보험회사 중 하나였다. 31개국에 지사를 두었으며, 150개가 넘는 재보험상품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는 론 퍼거슨으로 버핏이 잘 아는 사람이었다. 버핏은 제너럴 리를 잘 알고 있었고, 이 회사의 여러 요소가 버크셔의 인수 기준에 딱 들어맞았다. (예를 들어 퍼거슨은 부동자금의 규모와 비용, 수익률을 토대로 가치 창출 공식을 만들었다.) 그러나 인수 전에 버핏은 제너럴 리와 버크셔의 주식 맞교환에는 반대의사를 보였다. 이 문제에 대해 그는 완강한 태도를 보이면서 일부 주식만 교환하고 나머지는 버크셔의 현금으로 지불하였다. 그는 주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른 조건이 동일할 경우, 경영자들이 오너들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주식을 발행하지 않으려 하면, 그 회사의 주가는 내재가치를 최대한 반영합니다. 인수회사가 자사의 주식 일부를 매각해서 상대회사를 인수하려 할 경우, 일반적으로 시장가격보다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반면 매도 회사는 일반적으로 최대한 높은 가격으로 협상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인수회사는 결국 1달러를 얻기 위해 2달러를 놓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공정한 대금을 치르고 인수했던 훌륭한 회사가 악몽으로 변합니다. 금을 매입할 때는 금으로 가치를 매겨야지 납으로 가치를 매긴다면 훌륭한 거래라고 볼 수 없습니다.

 

변화를 관리하다

버핏이 제너럴 리를 인수한 숨은 이유 중 하나는 주식 매매 시 면세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버핏은 대체적으로 면세 효과를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1997, 버핏은 보유지분의 약 5%를 매도했다. 다음 해에는 상대적으로 보유비중이 적은 주식 중 상당수를 과감하게 가지치기하였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물론 과거에도 주식을 매도했지만 일반적으로 보다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투자 대상이 나타나고, 여기에 자본상의 제약이 겹쳐지는 경우에 한했다. 이 주식 매도로 막대한 현금을 손에 쥐긴 했지만, 그는 그 전에도 이미 150억 달러 이상의 현금과 예치금을 확보해둔 상태였다. 따라서 수익성이 보다 높은 주식에 투자하기 위해 보유지분을 매도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보다는 가치 평가에 대한 편견이 작용해서 매도를 결정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그러나 지분 비중이 높은 주식을 팔면 자본이득에 대해 상당한 세금을 내야한다. 특히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종목일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데, 버핏으로서는 당연히 피하고 싶은 세금이었다. 제너럴 리를 인수하면서 버핏에게 최선의 기회가 다가왔다. 자신이 가진 주식을 버크셔 해서웨이의 기준으로 평가한 다음, 이 가치를 이용해서 주식보다는 채권과 같은 고정수익증권의 투자비중이 높은 기업을 인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합병 전 버크셔의 500억 투자 자산 중 주식의 비중은 대략 80% 정도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1997년 말 제너럴 리의 240억 투자 자산 중 주식은 20% 정도에 불과했다. 따라서 버핏은 세금 한푼 내지 않고 주식 비중을 80%에서 대략 61% 정도로 줄일 수 있었다. 제너럴 리를 인수한 이후 S&P 500지수는 25% 급락했고, 채권 총 수익률은 대략 26%로 껑충 뛰었다. 시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버핏의 주 관심사는 투자 시기가 아니라 투자 가격이었다. 그는 제너럴 리 인수와 함께 따라온 막대한 부동자금에서 얻을 수익에 더 주목하였다. 인수되기 전에는 보수적 기준 아래 투자되던 부동자금으로 버크셔의 다른 수익 창출 사업을 보강한다는 계획이었다. 20세기 말의 주식시장은 극단적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IT분야를 비롯한 신경제new-economy 주식들은 대단한 강세를 누린 반면, 구경제old-economy 주식은 시가총액이 중소규모인 주식들을 중심으로 총체적인 약세의 늪에 빠져 있었다. 약세장에서 주가가 하락하면 기업들은 주식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하기 어렵게 된다. 또한, 채권 등의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할 때에도 비용이 올라간다. 버핏이 2000년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썼듯이 설상가상으로 정크본드junk bond시장도 연말이 다가올수록 말라붙고 있는 실정이었다.

 

3부 오너처럼 행동하라

가상의 능력의 영역

버크셔 해서웨이의 섬유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을 때 캔 체이스는 버핏에게 와서 신중하게 세운 확장 계획을 내놓았다. 버핏은 그의 제안을 모두 거절하였다. 그는 주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섬유업 투자에서 거둘 수 있는 이익 전망은 가상의 것이었습니다. 국내외의 경쟁사들 상당수는 경비 절감을 위해 같은 노력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회사들이 그렇게 하기 시작하자 섬유회사들의 원가절감은 업종 전반의 가격 하락을 이끄는 기본요인이 되었습니다.

 

버핏은 능력의 영역을 통해 체이스가 가지지 못한 전망을 얻을 수 있었다. , 그는 치열한 전투 속에 휘말린 내부의 시각과 전투 밖에서 관망할 줄 아는 외부의 매각을 동시에 이해하고 있었다. 다른 CEO 들처럼 버핏은 강하지 않다. 르네상스 이래로 자본 운용에는 무언가 잘못된 점이 있었다. 버핏은 이렇게 말한다. 애덤 스미스는 자유 시장에서 모든 경제주체의 행동이 사회 전체 부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를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카지노 같은 시장과 지나치게 민감한 투자가 보이지 않는 발이 되어 미래지향적 경제발전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가상의 능력의 영역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내부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 문제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대신 개별적으로 분석하려 한다. 버핏도 자본 운용시 발생하는 두 가지 문제점을 파악했기에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예측이 필요한 상황에서 발생하며, 두 번째 문제는 두뇌 속에서 예측을 할 때 발생한다. 이 두 가지 문제는 복합적인 시스템이 지닌 불확실성을 근절하기 위해 두뇌의 능력이 발휘될 때 겉으로 드러나려고 한다. 두뇌의 능력은 그럴 힘이 있기에 불확실성을 근절한다. 복합적 시스템은 예측이 힘들기는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뇌의 능력은 그럴 필요가 있기에 불확실성을 근절한다.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려면 인간은 계속 운전석에 있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또한 두뇌의 처리 능력은 제한되어 있기에 불확실성을 근절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버핏의 두뇌도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다. 눈앞에 닥친 적은 분량의 자료를 처리하며 여기에 대처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제한적인 합리성boundedly rational을 발휘하는 것이다. 버핏 파트너십을 세우기 전에 했던 주식투자를 회상하면서 버핏은 이렇게 말한다.

 

뉴욕에서 일할 때 내 주변에는 항상 온갖 자극이 흘러넘쳤다. 정상적인 아드레날린 수치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자극에 즉시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얼마 안 가 광적인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 버핏은 자신과 타인이 가진 감정과 발견적 학습의 취약성을 인식했기 때문에, 자본운용가로서 정보를 선택할 때 제한적인 합리성의 영역에 맞는 것만을 고른다. 우리가 가진 여과장치는 능력 부족으로 발생할 결과를 걸러내준다라고 멍거는 말한다.

 

불가능한 목표 vs. 가능한 목표

가상의 능력의 영역은 불확실성에 직면했을 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다. 또한 매우 독선적이다. 버핏의 능력의 영역은 여과장치로 가득 차 있으며, 제한적인 합리성에 맞춰 의사결정의 대안을 정하고 조정한다. 능력의 영역은 인간이 원하는 통제력을 제공해주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준다. 능력의 영역 덕분에 버핏은 1인 체제의 자본시장이 될 수 있다. 또한 일반적으로는 주식시장이 피드백을 제공하지만, 워런 버핏은 능력의 영역에서 자본 배치에 대한 피드백을 얻는다. 워런 버핏은 버크셔의 이사회 그 자체이며 경영자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그들이 원할 때 도움을 제공해준다. 버핏의 인지체계는 단단히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가동되는 데 아무 두려움이 없다. 그가 이것을 해피존 happy zone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해 가능한 미래

1991년 워런 버핏은 <뉴스잉크NewsInc.>지의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나무 그늘 아래에서 편히 쉴 수 있는 이유는 누군가 오래 전에 그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현 주주들이 버핏의 통찰력 덕분에 많은 이익을 얻고 있다면, 버핏의 사후 그들 앞에는 어떤 미래가 놓일 것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리더와 자본 운용가라는 두 가지 임무를 오너처럼 행동한다는 원칙에 결합시켰기 때문이다. CEO라면 누구나 이런 모습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가 버크셔를 떠나면 이런 모습에 담겨 있는 지혜도 사라진다. 가이코의 CIO(Chief investment officer, 자산운용최고책임자)인 루 심슨이 1979년 이후 버크셔의 모든 주식투자를 감독해왔다. 버핏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심슨은 우리가 버크셔에서 행하는 것과 똑같은 보수적이고 집중적인 투자 방법을 이용한다. 그가 버핏 사후에 자본운용을 담당하리라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그가 버크셔의 최고경영자에 오르게 될까? 그렇게 믿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버핏은 심슨이 버크셔의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그가 있기에 찰리와 나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버크셔에는 즉시 바통을 이어받아 투자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뛰어난 전문가가 있다고 안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이 사실만 가지고는 루 심슨이 주식투자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는 자본 배치를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CEO로서 버핏은 여러 가지 중요한 기회 중에서 적절한 것을 골라 자본을 배치한다. 주식시장에서 다른 대기업의 자본을 일부 매수하는 일은 그런 활동의 일부분일 뿐이다. 버핏은 일부 지분의 매수나 직접 인수, 자회사에 대한 자본 재투자, 주주들에게 자본수익을 제공하는 것이 별개의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금을 최대한 활용해야 현금을 벌 수 있다. 따라서 루 심슨이 버크셔의 주식투자를 관리한다는 사실에 상관없이, 주식의 가치평가에 대한 관점을 통합하고 다른 모든 투자안의 장단점과 비교해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에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이 자리에 가장 유력한 후보는 이그제큐티브 제트의 리치 샌툴리Rich Santulli와 아지트 자인이다.

 

리더십

버핏의 사후 버크셔가 직면할 가장 급박한 위험은 올바른 경영자를 끌어들일 능력이 감소한다는 점이다. 버핏의 인수 전략은 이미 오너처럼 행동하고 있거나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 경영자들에게 이상적인 집을 제공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버핏의 죽음과 함께 이런 매력도 같이 사라진다면 경쟁우위 한 가지가 없어지는 셈이다. 버크셔의 다음 CEO역시 고삐에서 손을 놓고 경영자들에게 자유를 보장해줘야 한다. 이는 그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 위의 문제보다는 덜하지만, 버크셔의 후임 계획이 가지는 또 다른 문제는 버핏이 본질적으로 버크셔의 CEO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버크셔 자회사들 중 상당수는 2세대 가족 경영자가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이런 형태의 기업은 현 경영세대가 물러나면 실패의 위험도 같이 따라온다는데 있다. 회사경영에 필요한 능력을 가지지 못한 3세대 경영자가 회사를 물려받는다면 1,2세대의 원동력이 되었던 내적인 동기부여도 같이 사라진다. 버핏은 경영자들에게 이 문제를 오랫동안 생각해보라고 요청했다.

 

버핏은 그들을 정기적으로 만나서 후임 경영자의 물망에 오른 사람들은 누구인지, 후임자들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지, 다른 후보는 누가 있는지 종이에 적어달라고 요구한다. 버핏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러분의 생각을 내 기억력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종이에 적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진짜 이유일까? 서면으로 제출하고 여기에 합리적인 논증을 뒷받침하려면 머릿속에서만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 서면은 최종적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바꾸기가 힘들다. 종이에 적힌 내용을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버크셔의 경영자들은 버핏과 마찬가지로 후임 계획을 섣불리 결정하지 않고 꼼꼼하게 챙긴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이 물러난 후 회사가 직면할 문제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시장의 효율성

자본주의는 아직 애송이 단계이다. 자본주의의 정수인 이익을 얻기 위해 인간이 지적 수단을 이용해서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이후부터이다. 지난 450년 동안 인간은 이런 지식 활용 능력을 재정립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표상인 기업을 제대로 평가하자는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70년 전에 불과하다. 워런 버핏이 주식 투자에 뛰어든 이후 시장의 복잡성과 어려움은 더욱 커져서 능력을 발휘하기가 힘들어졌다. 지식 수단이 연속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시장의 효율성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 책에서 주장한대로 능력의 영역이 가상의 능력의 영역을 몰아내고, 여과된 합리성이 제한적인 합리성을 대신하게 되면 자본 운용에서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때리기 쉬운 공은 급감하는 반면, 이를 기다리는 타자는 더욱 늘어난다. 인간의 속성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를 기다리는 타자는 더욱 늘어난다. 인간의 속성이 바뀌지 않는다면, 버크셔의 수학적인 성장률 기록이 멈추는 순간이 찾아올 것이 분명하듯, 기회도 자연스럽게 동반 소멸될 것이다. 확률분야의 권위자인 이언 해킹 Ian Hacking은 확률이론이 정립되기 수세기 전에 어떤 식으로 도박이 벌어졌을지 추측하며 이렇게 말한다.

 

확률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갈리아 사람들과의 도박에서 일주일 만에 승리를 거뒀을 것이다.” 워런 버핏도 비슷한 말을 한다. 자본주의 시대에 인간은 여러 가지 지적 수단을 발전시켜왔지만 감정과 심리의 벽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그러나 버핏은 감정과 심리의 벽을 뛰어넘은 사람으로 길이 기억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자본 배치능력을 귀중하게 여기는 적당한 시간과 장소에 태어났다.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는 나와 잘 맞는다. 정말로 운이 좋았다. 나는 자본 배치가-미국이라고 적힌 공을 잡은 것이다.“ 앞으로도 워런 버핏과 같은 사람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제임스 올러클린 지음

이콘, 20089월,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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