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 심리학의 숲에서 창의성, 욕망, 유혹 등의 주제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1. 역사, 흥륭과 쇠망의 이중주_흥륭사 

오늘날 중국 지도부가 벤치마킹 하려는 인물은 청 왕조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강희제다.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틈만 나면 측근들에게 강희제에 대한 기록을 읽어보라고 권유한다. 관영방송은 강희제의 치세를 다룬 강희 제국을 방영해 강희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대체 강희제는 어떤 인물이기에 지금의 중국에서 만주족 출신 황제를 벤치마킹하려 드는 것일까? 명 청 교체기 때 한족들은 만주족의 청 왕조에 봉사하지 않겠다는 강한 자존심을 지켜나갔다. 하지만 강희제는 핏줄과 관련된 저항의 벽을 뚫고 한족의 에너지를 국가 건설에 동원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리하여 15만 남짓한 만주족이 15천만 명이 넘는 한족을 268년이나 이끌어갈 기반을 마련했다.

 

강희제가 처음 북경을 장악했을 때였다. 명망 있고 절개 높았던 한족 학자들은 두 군주를 섬길 수 없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거부했다. 하지만 강희제는 청 왕조가 발전하려면 한족의 참여가 절실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한족과의 통합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 결과 1670년 만한전석이라는 대 연회 자리를 마련하여 한족 관리와 만주족 관리들이 자연스럽게 화합하도록 했다. 아무리 으르렁거리는 사이라도 먹는 자리에서는 너그러워지고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강희-옹정-건륭 3133년이라는 청나라 황금기는 결국 만한전석을 통해 만주족의 기상과 한족의 문화가 상승 작용을 일으킨 결과였다.

 

강희제는 책을 보다 피를 토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학구열이 높은 황제였다. 한족 출신 유학자로부터는 주자학을, 서양 신부로부터는 자연과학을 배우는 등 학문의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한 손에는 사서오경, 다른 한 손에는 서양고전과 외국어를 무기로 든 탁월한 계몽군주였다. 강희제는 대단한 무력을 과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1681년에는 삼번의 난을 진압해 명 왕조의 잔존 세력을 일소했고, 1683년에는 대만을 점령했다. 1685년에는 러시아 군대를 패퇴시키고 네르친스크 조약을 통해 그들의 남하를 저지했다. 현재 러시아 다음으로 넓은 영토를 확보한 중국의 판도는 신장 지역을 제외하면 바로 이 시기에 대체적인 윤곽을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문무를 겸비한 군주였다.

 

강희제는 격무에서 벗어날 때면 사냥과 원정을 나가는 등 끊임없이 몸을 움직였다. 그는 스스로를 영화롭게 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강희 61년 성대한 70세 생일 축하연을 열자는 신하들의 상소를 일언지하에 묵살했다. 한 사람이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지, 천하가 한 사람을 받드는 것이 아니다. 그는 명예도 탐하지 않았다. 재위 60주년 경축 때 문무백관들이 존호를 올렸을 때 엄히 꾸짖었다. 그가 존호를 거부한 것은 신기미(愼幾微)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신기미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잡념을 제거하고 자신을 단속한다는 뜻으로 강희문집맨 처음에 수록된 글귀다. 이는 황제의 자기 수양과 관련해, 신중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의미다.

 

강희제는 민생안정이라는 절대절명의 과업을 무위지치를 통해 이루어냈다. 무위지치란 최고의 다스림을 추구하려면 지도자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이른바 무위의 치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내가 여기 있음을 알아 달라고 강조하는 지도자는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없다. 강희제는 61년 동안 무위지치를 실현한 리더, 다스리지 않고 다스린 지도자였다. 그는 천하의 이익을 백성에게 돌려라라고 강조했는데 이는 지금 상황에서도 다르지 않다. 나서지 않아도 다스려지고, 지휘되고, 한 방향으로 갈 수 있어야 직원들도 안거낙업(근심 없는 삶을 살며 즐겁게 생업에 임함)할 수 있다.

 

2. 창의성,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힘 

최근 많은 기업들이 창의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창의성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기존의 것에서 벗어난 색다른 차이가 쉼 없이 지속될 때 나타난다.

미하일 칙센트는 창의성 발현의 3요소로 일련의 상징적 규칙과 절차로 이루어진 영역, 그 영역으로 가는 길목에서 문지기 역할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활동 현장, 그리고 창의성을 발휘하는 개인을 꼽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를 보자. 프리미어 리그가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가 될 수 있었던 근본 이유는 창의성의 발현에 있다. 여기서는 최고의 플레이어들이 창의적으로 플레이한다. 최고의 고객 만족이나 최고의 흥행도 창의적 발상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창의성 발현의 3요소를 여기 대입시켜 보자. 영역=축구, 현장=프리미어리그, 개인=플레이어가 된다. 프리미어 리그 경기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그림이 그려지는가? 아무리 타고난 축구 기량을 가진 사람도 산간벽지에 틀어박혀 살면 축구라는 영역에서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가 없다. 즉 창의성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발휘할 영역을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선택과 집중의 문제이다. 그저 잘하는 게 아닌 탁월할 수 있는 곳에 자신의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기업은 모든 면에서 창의를 추구한다. 창의성은 우리가 먹는 밥과 같다. 우리가 움직이고 살기 위해 밥을 먹듯, 조직이나 기업도 창의성이라는 밥을 먹어야 생존할 수 있다. 대표적인 창의적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는 창의적 인재 선발에 항상 고심한다. 처음부터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을 뽑는 것이다. 인터뷰 때 이들이 항상 묻는 질문은 왜 맨홀은 둥근가?이다. 물론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정답이 없는 질문에 어떤 발상과 논리로 자기만의 솔루션을 펼치는가를 보겠다는 것이다.

 

CEO 빌 게이츠는 1년에 두 번, 일주일간 외딴섬 별장에 틀어박혀 300편에 달하는 직원들의 크레이징 리포트(crazing report)를 독파한다. 그러다가 무언가 떠오르면 리포트를 낸 직원에게 직접 연락한다. 함께 대화를 나누며 기존 관행을 뒤덮을 아이디어를 뽑아낸다. 빌 게이츠는 생각주간(think week)라고 부르는 이 기간 동안 시장의 항로를 가리키는 나침반을 새로 얻는다. 실제로 이 주간이 지나면 항상 마이크로소프트가 새롭게 시장을 점령한다. 새로운 표준을 제시해 시장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것이다. 빌 게이츠는 고독의 시공간에서 미래를 창조해내고 있는 것이다. 창의성은 새로운 문화를 만든다. 문화적 돌연변이가 탄생해 그것을 모방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 그 모방이 하나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리고 변화가 뿌리를 내리면 또 다시 그것이 문화가 된다.

 

스티븐 샘플은 창의적 리더가 되려면 고정관념의 교실에서 탈출하라!고 말했다. 리더는 고정관념의 교실에서 뛰쳐나와 생각의 고인 물이 아니라 생각의 흐르는 물에 몸을 적시고 그것을 마셔야 한다. 그렇다면 고정관념을 벗어난 창조적 상상력을 체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3070의 법칙을 지켜야 한다. 이는 자기 시간의 30%는 실질적인 업무에 쏟되 나머지 70%는 재충전과 여가 혹은 남들 눈에 하찮게 여겨지는 것들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400년 이상 된 고전을 많이 읽어야 한다. 최근 나오는 책과 자료는 경쟁자도 읽는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려면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의 것을 끄집어내어야 한다. 400년 이상 묵은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사람들의 시선이 비껴 가는 지점을 살피라는 의미다.

 

셋째, 몰입의 즐거움을 배워야 한다. 퀴리 부인은 엄동설한에 난로도 없이 실험결과를 기다리며 연구실을 지켰다. 미켈란젤로는 15년이나 시스틴 성당 천장에 매달려 <천지창조>를 그렸다. 언뜻 미친 짓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미치지 않으면 창조도 없다. 미쳐야 몰입할 수 있고 몰입해야 뭔가를 창조해낼 수 있다.

 

3. 디지털, 그 감각의 제국을 지배하라 

영화 <위기의 남과 여>를 보면, 호텔방을 청소하던 귀머거리 하녀가 헨리 무어의 청동조각상을 훔치는 장면이 나온다. 사실 그녀는 그것을 훔친 게 아니다. 청동조각상이 말을 걸어오는 게 신기해서 들고 나온 것뿐이었다. 귀머거리가 조각상의 속삭임을 들었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것을 느낌으로 공감해보면, 새로운 상상력과 창의성의 시너지로 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느낌, 감성, 감각의 로직이다. 이 로직을 원활히 작동시키려면 무엇보다 세상을 향한 오감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의 감각에 의존하는 대신 전 감각을 활용해야 한다. 이런 요구를 온 몸으로 실천한 사람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다. 그가 어떻게 감각을 단련했는지 살펴보자.

 

첫째, 시각훈련(내면의 극장 만들기). 벽에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걸어놓고 1주일간 하루 최소 5분씩 찬찬히 살핀다. 그런 다음 잠자리에 들 때 낮에 본 그림의 세밀한 부분까지 떠올린다.

 

둘째, 청각훈련(고요에 귀 기울이기). 잘 들으려면 침묵과 고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바로 거기서 그동안 외면해왔던 진정한 청각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셋째, 후각훈련(아로마테라피) 인간은 500만 개의 후각 세포로 하루 23천 번 이상 호흡을 하면서도 냄새에는 둔감하다. 잡다한 냄새에 취해 후각 기능이 마비된 탓이다. 따라서 하루에 한 번 이상 아로마테라피를 즐기며 후각을 정화할 필요가 있다.

 

넷째, 미각훈련(맛 음미하기). 제대로 맛을 음미하려면 천천히 먹어야 한다. 맛을 느낄 겨를도 없이 허겁지겁 먹으면 진정한 맛을 알 수 없다. 천천히 음미하며 먹는 버릇은 맛 즐기기는 물론 건강에도 좋다.

 

다섯째, 촉각훈련(상상하며 더듬기). 뇌는 온몸의 촉각 돌기로 늘 깨어 있다. 촉각을 최대화하려면 상상하며 만져야 한다. 다 빈치는 상상이야말로 감각 운동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르네상스 시대는 오감의 균형을 최고 가치로 삼았다. 반면 근대로 들어오면서 오감의 불균형 시대가 열렸다. 이성과 합리주의가 근대를 시각의 시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상황이 역전되었다. 균형 잡힌 감각 융합의 복원이 가능해진 것이다. 인간이 미디어를 발명한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였다. 아날로그 미디어는 오감을 한꺼번에 저장하고 전달하며 확산시킬 수 없었고, 대신 이것들을 분리해 각각 확장시켰다. 하지만 디지털은 몸 안에서 뒤섞인 감각의 융합을 몸 바깥에서도 자유자재로 저장하고 전달하고 확산시키는 것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아날로그 휴대폰과 디지털 휴대폰의 근본적인 차이는 오감을 섞을 수 있느냐?이다. 아날로그 휴대폰은 말하고 듣는 기능이 전부였다. 하지만 디지털 휴대폰은 청각(음성통화)은 기본이고 촉각(문자 메시지), 시각(화상카메라) 등도 함께 운반한다. 디지털 미디어는 청각, 촉각, 시각 등이 함께 어우러지는 복합 감각의 장이다.

 

4. 스토리, 미래 사회를 사로잡는 힘 

드림 소사이어티란 이야기를 생산품처럼 만들어내는 사회를 말한다. 롤프 옌센은 말한다. 드림 소사이어티 시장은 감성과 꿈이 지배한다. 소비자들은 상품 자체를 사는 것이 아니라 상품에 얽힌 이야기를 산다. 그것을 충족시킬 수 없는 상품은 도태되고 만다. 기업과 시장을 주도하려면 이야기꾼이 되어라. 그것이 정보화 시대 이후에 도래할 드림 소사이어티를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이다. 나이키는 언어와 국경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펼쳐 보인 대표적인 기업이다. 나이키가 중시하는 것은 상품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불패와 승리의 신화다. 나이키를 신었다는 것은 그 이야기를 체화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이키를 신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다. 나이키야말로 명백한 드림 소사이어티 기업이다.

 

드림 소사이어티는 이야기의 힘이 지배하고 꿈과 감성이 주도하는 사회다. 이야기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는 <해리포터>의 영향력만 봐도 알 수 있다. 인간의 정보 흡수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객관적인 정보를 계속해서 날로 우겨 넣다보면 머리가 포화상태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흥미로운 이야기에 담아 전달하면 거의 무한대의 흡수가 가능해진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힘, 내러티브 파워(narrative power)이다. 그러므로 드림 소사이어티의 CEO에게는 강력한 스토리텔링 능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스토리텔링이란 꿈과 감성이 버무려진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것이다.

 

조직이 강해지려면 조직의 스토리가 모든 조직원과 조직의 상품 속에 담겨 있어야 하며, 기업이 생존하려면 자기만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그것을 확산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재화와 서비스에 어떻게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까?

첫째, 이야깃거리가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산악인, 운동선수 등을 후원하면서 그들이 만든 이야기에 제품을 매치시키는 것이다.

둘째, 새로운 이야기를 창출해낼 수 있는 이벤트를 연다. 스포츠 행사나 사막과 열대우림을 가로지르는 랠리 등을 개최하여 모험을 담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것을 제품과 연결짓는 것이다.

셋째, 고객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도록 계기를 마련해준다. 가령 자유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시가(Cigar)의 이야기는 생산자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시가 소비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우리나라 와인 시장의 규모는 세계적이다. 와인은 그 어떤 술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와인을 음미한다는 것은 이야기를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와인에 담긴 매혹적인 이야기들은 지금도 많은 이들을 와인 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산업 시대 최고 우상은 포드 자동차를 만든 포드였다. 정보화 시대의 최고 우상은 빌 게이츠였다. 그렇다면 드림 소사이어티 최고 우상은 누가 될 것인가? 사람들은 입을 모아 스티븐 스필버그를 꼽는다. , 감성, 이야기가 주도하는 드림 소사이어티의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콘텐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굳이 스필버그가 아니라도 누구나 드림 소사이어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앞으로는 스토리를 만들고 내러티브를 생산해 내는 콘텐츠웨어가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 이야기 전쟁이 총 칼의 전쟁을 압도하게 될 것이다.

 

5. 매너,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MBA 과정에서 유수 기업 CEO를 대상으로 당신이 성공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놀랍게도 응답자의 93%가 능력, 기회, 운 등이 아닌 매너를 꼽았다. 실제로 기업에서 임원이 되려면 프로토콜(외교상의 의전)을 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느 자리에 들어가고 어느 자리에서 빠져야 하는지, 어디가 상석인지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전무, 부사장 정도가 되면 프로토콜의 달인이 되어야 하며, CEO가 되면 숟가락으로 국 떠먹듯이 자연스럽게 프로토콜을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에티켓과 매너는 어떻게 다를까? 쉽게 말해 에티켓은 행동기준이고 매너는 그것을 나타내는 방법이다. 언젠가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만찬에 중국 관리들이 초대되었다. 그런데 중국 관리들이 핑거볼에 담긴 손 닦는 물을 차인 줄 알고 마셔버렸다. 에티켓에 어긋난 것이다. 하지만 여왕은 그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같이 그것을 마셨다. 상대가 한창 마시고 있는데 그 물로 손을 닦으면 얼마나 민망하겠는가? 에티켓과 매너의 차이는 이 지점에서 나타난다. 여왕은 비록 에티켓은 어긋났지만 훌륭한 매너를 보여준 셈이다. 이처럼 원칙이 분명하면 보다 유연해지는 것도 가능하다.

 

매너는 단지 외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알아야 한다. 매너는 시간적 흐름인 역사에 따라 변화해 왔듯, 공간적으로도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 즉 지역 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매너의 공간지리학이다. 많은 서구 학자들은 인도인들이 빈곤한 삶을 사는 이유가 암소 숭배 때문이라고 보았다. 암소를 생산적 활동에 쓰지 않고 모시고 사니, 그 암소를 먹여 살리느라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힌두교가 종교인 인도에서 살아남으려면 암소에 대한 그들의 매너에 익숙해져야한다.

 

유태인과 무슬림들이 돼지고기를 멀리하는 이유도 단순하다. 성경에 돼지는 불경하니 절대 제물로 쓰지 말라는 말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그들의 돼지고기 기피가 위생적인 문제 이전에 하나의 문화이며 문명화 과정에서 형성된 그들만의 매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매너의 다양성을 인식해야 한다. 상대의 문화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 글로벌 리더는 상대의 문화에도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단순히 외국어를 잘한다고 글로벌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타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문화에 맞게끔 행동할 수 있고, 그 문화를 현지인처럼 받아들일 수 있어야 글로벌 리더인 셈이다. 진정한 매너는 어떤 법칙이나 형식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감수성을 온몸으로 익혀야 가능해진다. 사람에는 인격, 회사에는 사격, 나라에는 국격이 있듯 매너에도 품격이라는 것이 있다. 매너를 익히되 그 품격이 갖추어질 때만이 감성 리더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자.

 

6. 전쟁, 먼저 사람을 얻어라 

전쟁은 하나의 경영이다. 사람을 다루고, 변화에 즉각 대응하고, 목표를 향해 전진하고, 승리를 추구 하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전쟁은 사람이 하는 것인 만큼 전쟁에서 이기려면 인간을 탐구해야 하며, 그것은 시장도 마찬가지다. 전쟁이든 경영이든 목표는 결국 승리다. 패배한 쪽은 목숨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쟁은 최고의 인문학 주제로 손색이 없다. 대 서사시에 버금가는 수많은 인간 드라마의 극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미국 육군참모총장 조지 마셜은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한 일은 그저 승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한 것뿐이다. 그가 선택한 이들은 브래들리, 아이젠하워 같은 명장들이었다. 사실 마셜이 없었다면 아이젠하워도 없었다. 마셜은 아이젠하워의 임무 수행 능력을 높이 평가해 그를 소장으로 진급시킨 뒤 북아프리카 전선을 지휘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아이젠하워가 유럽 주둔 연합군 사령관이 되자, 대통령에게 아이젠하워의 대장 진급을 강력히 요청해 이를 성사시켰다. 이를 보면 상대에 대한 배려가 그의 리더십의 일차적 요건임을 알 수 있다.

 

조지 마셜의 리더십과 매력을 분석해 보자. 중대장 시절 그는 부대원들의 이름을 철자 하나까지 외우고 다녔다. 또한 그는 부하들의 말뿐만 아니라 그들이 말하지 못한 생각까지 들을 줄 아는 상관이었다. 들을 줄 모르면 리더가 될 수 없다. 그는 아랫사람에게는 따뜻하게 조언을 건넬 줄 알았고, 무작정 비판하는 대신 부하와 함께 더 나은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게다가 그는 누구보다도 강한 인내심의 소유자였다. 일희일비하지 않았으며 평상심을 유지할 줄 알았다. 자신의 명예와 지위, 권력을 부여한 권위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범접하기 힘든 위엄이 있었다.

 

리더십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진정 위대한 지휘관은 모든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전투는 단지 극복되어야 하는 어려움의 연속일 뿐이다. 장비 부족, 식량 부족 등 무엇 무엇이 부족하다는 말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승리함으로써 자기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리더십이다. 조지 마셜은 바로 그러한 리더십을 실현한 사람이었다.

 

한편 2차 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했던 아이젠하워는 복잡한 문제를 단순명료하게 풀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아이젠하워 원칙이라는 말이 있다. 어지러운 혼돈 상태를 단순하게 정리하는 방법을 말한다. 먼저 빈 책상 위에 바닥을 4등분한다. 그리고 1번 공간에는 버릴 것, 2번 공간에는 다른 사람에게 지시해 처리할 것, 3번 공간에는 연락할 것, 4번 공간에는 당장 처리할 것을 배치한다. 그러면 정작 책상 위는 일이 진행될수록 말끔히 치워진다. 아이젠하워의 책상은 언제나 말끔했다. 쓸데없는 것을 버릴 줄 알았기 때문이다. 프로는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들 줄 안다. 특히 리더는 자신의 삶을 단순화 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아이젠하워 리더십의 정수다.

 

프레드 그린슈타인은 위대한 대통령은 무엇이 다른가에서 아이젠하워의 탁월한 정서적 집중력을 거론하였다. 물론 이 정서적 집중력은 아무리 복잡한 상황도 단순화시킬 줄 아는 아이젠하워의 능력에서 비롯된다. 단순화 능력과 정서적 집중력간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실제로 아이젠하워는 8년간의 대통령 임기동안 자신의 원칙에 충실했다. 복잡하게 얽힌 일을 혼자 끌어안는 대신 관심 영역에서 버려야 할 일은 버리고, 참모에게 맡기거나 협조를 얻을 일, 당장 자신이 처리해야 할 일, 그리고 여타의 연락과 중재업무를 정확히 구분해 처리했다. 머릿속과 주변이 잡동사니로 가득한 상황에서는 정서적 집중을 기대하기 힘들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자칫 복잡한 상황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쉽다. 이럴 때 정서적 집중력을 통해 감성 능력을 배가시킴으로써 전 미국인으로부터 가장 대통령다운 대통령으로 존경받았던 아이젠하워는 분명 주목해볼 만한 인물이다.

 

정진홍 지음

21세기북스. 200711월.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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